평창올림픽

귀화선수 그리핀 첫 골 '선물'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하버드대 생물학과 출신
박윤정 패스 받아 '벼락 슛'
머리 감독 "최고의 경기 펼쳐"

18일부터 5~8위 순위결정전

14일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남북단일팀과 일본 경기에서 단일팀 랜디 희수 그리핀(가운데)이 슛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B조 조별리그 3차전 남북단일팀과 일본전이 열린 14일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 2피리어드 중반 단일팀 박윤정(26·미국명 마리사 브랜트)의 패스를 받은 랜디 희수 그리핀(30·사진)이 상대 수비수 한 명을 앞에 둔 상황에서 재빨리 스틱을 휘둘렀다. 퍽은 낮게 날아가 일본 골리(수문장) 다리 사이를 통과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관동하키센터를 가득 메운 4000여 명의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단일팀이 그토록 기다려온 첫 골이었다.

이후 단일팀은 추격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고 추가 골을 허용하며 1-4(0-2, 1-0, 0-2)로 패했다. 비록 첫 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시아의 강호 일본을 맞아 선전을 펼쳤다.

◆단일팀 갈증 풀어준 첫 골

처음 주도권을 틀어쥔 건 일본이었다. 일본은 경기 시작 4분도 안 돼 두 골을 몰아쳤다. 1피리어드 1분7초에 도코 하루카가 골문 뒤에서 문전으로 뽑아준 패스를 앞으로 쇄도하던 구보 하나에가 침착하게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후 3분58초에 오노 쇼코의 두 번째 골이 나왔다.

단일팀도 당하고 있진 않았다. 9분49초에 박채린(20)의 첫 슈팅을 신호탄으로 폭풍처럼 일본을 몰아치며 전세를 뒤집었다. 그리고 0-2로 뒤진 2피리어드 9분31초에 그리핀의 스틱에서 올림픽 첫 골이 터져 나왔다. 박윤정이 보드를 튕겨서 내준 패스를 그리핀이 슈팅으로 연결했다. 빗맞았지만 방향이 절묘했다. 데굴데굴 굴러간 퍽은 일본 골리 고니시 아카네의 다리 패드 사이를 통과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경기 연속 0-8 패배에 움츠렸던 선수들은 승리한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관중 일부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 목표는 동점이었다. 몸을 던지는 선수들의 투혼과 골리 신소정의 선방에 힘입어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첫 골의 주인공인 그리핀이 페널티로 2분간 빠진 3피리어드 11분42초에 단일팀은 일본의 고이케 시오리에게 추가 골을 내줬다. 경기 막판 단일팀은 신소정까지 빼며 전원 공격 전술을 폈으나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1분27초를 남기고 우키타 루이에게 골을 내줬다.

추가 골과 첫 승 목표는 이룰 수 없었지만 관중은 단일팀에 박수를 보내며 큰 목소리로 “잘했다!”고 격려했다. 북한 응원단도 경기 내내 관중과 함께 응원전을 펼쳤다. 세계 랭킹 9위 일본을 맞아 대등한 경기를 펼친 단일팀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세계 랭킹은 22위, 북한은 25위다.

◆‘하버드 출신 귀화선수’ 그리핀
남북 올림픽 단일팀의 첫 득점이자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사상 첫 올림픽 골은 귀화선수 그리핀의 스틱 끝에서 나왔다. ‘희수’라는 가운데 이름을 물려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리핀은 지난해 3월 특별귀화한 선수다. 1980년대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간 외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정부 고위 관료를 지냈다.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듀크대 생물학과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있는 그리핀은 한국 대표팀에서 뛰기 위해 휴학계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0세 때 아이스하키를 접한 그리핀은 22세에 대학을 졸업한 뒤 뛸 팀이 없어 스틱을 내려놓았다. 이후 공격수 박은정(캐롤라인 박)을 통해 그리핀의 존재를 알게 된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그는 망설임 없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핀을 비롯한 단일팀에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날 패배로 B조 조별리그를 3전 전패로 마친 단일팀은 오는 18일부터 5~8위 순위결정전을 치른다. B조 3위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일본과 재대결 가능성이 크다. 설욕은 물론 첫 승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세라 머리 감독(30·캐나다)은 “지금까지 일본을 상대로 한 경기 중에서 최고였다”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강릉=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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