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17세9개월 최연소 금메달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서 환상의 연기로 98.25점 1위
1080도 두 번 연속 회전하는 10-10까지 완벽하게 성공
"어릴수록 유연성 좋고 겁없어"…남녀 스노보드 '10대 천하'

< ‘예술’ 같은 공중회전 기술 > 스노보더들이 ‘아트의 영역’이라며 열광하는 기술이 공중 세 바퀴 돌기인 ‘백투백 1080도’다. 클로이 김은 13일 결승전에서 다른 선수들이 한 번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이 기술을 두 번 연속 선보이는 이른바 ‘텐-텐(10-10)’을 성공시켜 급이 다른 실력을 과시했다. 클로이 김의 공중회전 기술을 연속 동작으로 찍은 모습. /연합뉴스

“배고파서 화나요!”

한국계 미국 스노보더 클로이 김(한국명 김선)은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저녁 트위터에 이런 말을 올렸다. 체중 관리를 위해 샌드위치를 먹다 남긴 자신의 결정을 자책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11일 예선전 도중에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여유와 자신감, 분방함으로 똘똘 뭉친 10대 소녀의 ‘세상 발랄’ 그대로였다.

여제가 된 밀레니엄 베이비

‘배고픈 소녀’ 클로이 김이 마침내 ‘스노 퀸’에 등극했다. 13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역대 최고점인 98.25점을 받아 하프파이프 종목 최연소(17세9개월)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전 기록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켈리 클라크(미국)가 기록한 18세6개월이었다. 클로이 김은 금메달을 확정한 뒤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하와이안 피자”를 먹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스노보드는 고난도 묘기와 점프 높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체중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변은 없었다. 예선에서 유일한 90점대인 95.50점을 받아 1위로 결선에 선착한 그는 결선에서도 혼자 90점대를 적어내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은메달을 딴 류자위(중국)가 89.75점, 동메달을 차지한 아리엘 골드(미국)가 85.75점에 그쳤다.

클로이 김은 1차전에서부터 ‘필살기’인 1080도 회전을 유일하게 성공시켜 일찌감치 금메달을 예약했다. 1차전 점수가 93.25점으로 2위를 8점 가까이 따돌렸다. 선수들은 2차, 3차 시도에서 자주 넘어졌다. 클로이 김이 워낙 높은 점수로 기준을 높여놔 이를 넘어서려는 무리한 기술 시도가 많았던 탓이다.

‘텐-텐’ 기술 올림픽에서 첫 성공

3차 시도 마지막 주자로 나설 때 이미 금메달을 확정한 터였다. 클로이 김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연습 훈련을 하듯 하프파이프를 좌우로 날아올라 720도, 900도, 1080도 회전 연기를 가뿐하게 성공시켰다. 다른 선수들이 2m 안팎의 에어(공중으로 솟구치는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는 3~5m의 ‘고공 플레이’로 고난도 묘기를 소화해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실제 선수들의 부츠에 모션 센서를 부착해 측정한 점프 높이에서 클로이 김은 최고 4m, 평균 2.8m를 기록했다. 2위권 그룹의 최고 높이가 3m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마지막 연기에선 ‘10-10(1080도를 두 번 연속으로 회전)’까지 완벽하게 성공해 마치 ‘갈라쇼’를 보여주듯 여제 등극을 자축했다. 점수판엔 역대 올림픽 최고점인 98.25점이 찍혔다.

클로이 김은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네 살 때 아버지(김종진)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해 여섯 살 때 미국스노보드연합회가 주최한 내셔널챔피언십에서 3위에 올라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냈다. 2015년 동계 엑스게임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15세)을 세웠고, 2016년 릴레함메르 동계 유스올림픽에서는 2관왕을 차지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그해 열린 US그랑프리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백투백 1080(연속 3회전 점프 기술)을 성공시켜 100점 만점을 받았다. 클로이 김은 금메달을 딴 직후 “딸이 스노보드에 열정을 가졌다는 이유로 일도 그만두고 따라다녀 주신 아버지에게 많이 감사하다. 오늘은 가족을 위한 경기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스노보드 남녀 10대가 호령 왜?

레드먼드 제라드(17·미국)가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클로이 김까지 금메달을 추가하자 ‘10대 천하’라는 말도 나온다.
노성균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PGS(평행대회전) 경기위원장은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종목에 어린 선수들이 톱 랭크에 많이 분포돼 있는 건 유연성 때문”이라며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20대 후반이 되면 은퇴 시점이 다가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BBC 스포츠 해설가인 드 리는 ‘겁 없는 10대’의 심리적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나이 들고 경험 많은 선수들은 어린 선수들처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연령 제한 규정이 사라질 경우 이번에 출전하지 못한 13세 이하 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어릴 때부터 쉽게 스노보드를 접할 수 있는 북미권 환경의 특성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 위원장은 “한국 아이들이 누구나 태권도장에 가는 것처럼 미국은 스노보드를 타고 여름엔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며 “프리스타일의 10대 강세는 이런 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설명했다.

이관우/박진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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