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스타트 올림픽 첫 금메달 꿈꾸는 김보름

어릴적 태권도 선수로 뛰다가 쇼트트랙으로 '얼음판 인생'
늦게 시작한 탓에 성적 부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여성 장거리 '간판'으로 거듭나
매스스타트·팀 추월 종목… 태극마크 단 '평창 기대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장거리 ‘간판’ 김보름(25·강원도청·사진)은 다음달 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자주 중계화면에 등장할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매스스타트, 팀추월 등 총 2개 종목 국가대표로 나선다. 스케이트를 신은 지 13년 만에 가슴에 단 태극마크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동계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한다”며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만큼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태권도, 쇼트트랙, 그리고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기대주로 올라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보름은 초등학교 5학년에야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그는 이전까지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다. 김보름은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운동해 4단까지 땄다”며 “하지만 스케이트를 타본 뒤 얼음 위를 미끄러져 달리는 느낌에 반해 종목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출발은 쇼트트랙이었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출발이었다. 쇼트트랙을 10년 가까이 탄 또래 선수들과의 실력 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교까지 계속 뒤처진 김보름은 절망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때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김보름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TV를 보던 김보름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이승훈(29·대한항공)의 경기를 봤다. 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을 보며 김보름은 주먹을 다시 쥐었고 그해 5월 다시 스케이트를 집어 들었다. 김보름의 선택은 쇼트트랙이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이었다.

넘어져도, 난 다시 일어난다

김보름이 스피드스케이팅에 나설 당시 나이는 19살이었다. 역시 출발이 늦은 김보름은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더 혹독하게 자신을 훈련 속에 내던져야 했다. 이를 악물고 빙판 위를 내달린 그의 노력은 1년 뒤부터 빛을 발했다.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보름은 여자 3000m에서 5분10초5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김보름에게 새로운 기회도 주어졌다. 매스스타트였다. 최대 24명의 선수가 레인에 제한받지 않고 400m 트랙을 16바퀴 도는 경기다. 채점 방식은 4-8-12바퀴째 1~3위에게 5-3-1점을 부여하고, 결승라인을 넘은 1~3위에게 60-40-20점을 준다.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결합한 종목으로 김보름에겐 최적화된 종목이었다.

2015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는 평창올림픽에서 처음 열린다. 김보름은 이 종목을 집중 공략했다. 2016~2017 시즌 그는 강릉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매스스타트 종합에서 우승을 휩쓸며 ‘매스스타트 1인자’ 자리에 올랐다. 이때 노란 머리의 김보름은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2년 전에 기분 전환용으로 염색을 했는데 징크스처럼 금메달이 따라다녀 계속 노란색을 유지하고 있다”며 “열심히 훈련해 금빛 머리의 징크스가 평창올림픽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보름 선수에게 좌우명을 묻자 자신의 25년 삶을 요약한 듯한 한 문장을 말했다. “주저앉는 것은 다시 일어서기 위함이다”라고. 그의 오른쪽 팔에도 같은 말의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김보름은 “훈련하다 힘들고 지치면 이 문구를 항상 떠올린다”며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최종 꿈’을 묻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유소년 선수들에게 어떤 스케이터가 되고 싶은지 물을 때 내 이름이 나오면 뿌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케이터로서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평창올림픽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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