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정신병원 이달 말 폐쇄
낮은 의료수가로 경영난 가중
환자 입원 규정 강화도 부담
"병원 운영 더 이상 힘들다"

간호사·영양사 구하기도 힘들고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이전 요구

서울 청량리정신병원이 13일 환자들의 발길이 끊겨 한적하다. 국내 1호 정신병원으로 1945년 설립된 이곳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이달 말 문을 닫는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국내 첫 정신병원인 청량리정신병원이 이달 말 문을 닫는다. 혐오시설이라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극복하지 못한 데다 지속돼온 경영악화와 인력난이 시설 폐쇄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낮은 의료수가 등 열악한 의료 환경도 73년 된 병원이 문을 닫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방 직후 문 연 국내 1호 정신병원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장동산·최문식 청량리정신병원장은 지난달 말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이달 말까지만 병원을 운영한다고 공지했다. 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말부터 신규 환자는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날 기준 전체 500병상 중 200여 병상에 환자가 입원해 있다. 병원은 보호자와 협의해 이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1945년 8월 서울 동대문구에 청량리뇌병원으로 문을 연 청량리정신병원은 국내 1호 정신병원이다. 280병상이던 청량리뇌병원은 1980년 청량리정신병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1981년부터 500병상 규모 병원으로 운영됐다.

1956년 화가 이중섭이 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당시 원장이던 고(故) 최신해 설립자에게 “정신질환이 아니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한 일화가 유명하다. 시인 천상병도 1960년대 후반 거리를 떠돌다 행려환자가 돼 이 병원에 입원하는 등 한국 정신병원의 역사로 불린다.

1980년대 이전에는 해방, 6·25전쟁 등을 거치며 거리를 떠도는 정신질환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을 수용하던 청량리정신병원에도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입원환자를 면회 오는 가족들이 병원 주변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안 좋은 편견도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정신병원을 낮춰 일컫는 ‘언덕 위의 하얀집’이라는 말도 이 병원에서 비롯됐다.

병원 시설규제 강화에 인력난 겹쳐

편견은 끝내 극복되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은 이 병원을 혐오시설로 규정하며 이전을 요구해왔다. 행려환자가 수시로 드나드는 데다 낙후된 병원 건물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동대문구는 장동산·최문식 원장과 병원을 종합병원으로 바꾸는 방안도 논의했다.

하지만 “설립자의 뜻을 살려 정신병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판단에 협상은 결렬됐다. 병원을 계속 운영하려면 시설 보강 공사 등이 필요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장 원장과 최 원장은 폐업을 결정한 뒤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병원 건물이 낡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에 문제가 있어 여러 차례 신축을 시도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그사이 경영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비급여 치료 등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행려환자, 의료급여 환자를 주로 진료하다보니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는 병원을 운영하기조차 힘들었다. 대형 대학병원으로 간호사들이 몰리면서 신규 간호사를 뽑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져 새로 간호사를 뽑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장 원장과 최 원장은 “오래전부터 간호인력과 영양과 직원을 모집하기 어려웠다”며 “최근에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고 했다.
제도 변화도 폐쇄 부추겨

각종 제도 변화도 병원 폐업의 원인이 됐다. 사망이나 중증 상해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의료분쟁조정 절차를 시작하도록 한 일명 ‘신해철법’, 정신질환자 치료를 입원에서 외래 중심으로 바꾼 정신보건법 등은 경영에 부담이 됐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 소송에 걸려 법원에 가면 ‘왜 미리 검사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데, 이를 고려해 미리 검사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과잉진료로 의료비를 삭감한다”며 “73년 된 역사 깊은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국내 병원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의미”라고 했다.

청량리정신병원이 폐업을 결정하면서 병원을 찾던 환자들의 진료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지역에 정신병원 병상이 적지 않기 때문에 다른 병원 등으로 충분히 환자들이 분산해 입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료 공백이 없도록 신경쓰겠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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