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수술 패러다임

수혈 부작용 겪는 환자
매년 1000여명 넘고 헌혈 줄어 혈액부족 심화

고대안암병원·백병원 등 불필요한 수혈 줄이기 나서
‘혈액을 아껴야 생명을 구한다(save blood, save lives)’.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제목이다. 지금까지는 수술할 때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게 당연하게 인식됐다. 이 같은 수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수술 전 빈혈을 교정하고 수술 중엔 터진 혈관을 꼼꼼히 막는 무수혈 수술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수혈 수술이 환자 맞춤치료 시대를 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수혈 수술 늘리는 병원들

백중앙의료원은 지난달 말 해운대백병원에 무수혈센터를 열었다. 이로써 1980년대 국내 첫 무수혈센터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다섯 개 산하 병원 모두에 무수혈센터를 갖추게 됐다. 고려대안암병원은 오는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정수혈 수술 병원’을 선포할 계획이다. 의료진이 혈액을 신청할 땐 이유 등을 꼼꼼히 적고 불필요한 수혈 사례도 교육한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장은 “혈액을 많이 쓰는 수술은 의사 중심 수술”이라며 “수혈을 줄인 수술이 진정한 환자 중심 치료”라고 했다. 그는 “빈혈 환자는 2~3주 약을 쓰면 정상이 되는데 대부분 의료진이 기다리지 못하고 수혈을 한다”며 “수술을 빨리 끝내려고 출혈 부위를 제대로 잡지 않고 수혈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는 수혈 대체 치료를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혈제와 고용량 철분제 등을 적절히 쓰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무수혈 수술은 환자 맞춤 치료”

병원들이 수혈량 관리에 신경쓰는 것은 수혈을 적게 할수록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혈은 다른 사람의 피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매년 국내에서만 1000명 넘는 환자가 수혈 부작용을 겪는다. 수혈률이 24% 줄면 환자 사망률은 5.5%에서 3.3%로 감소하고 입원 기간은 10.1일에서 6.5일로 짧아진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수혈을 줄이려면 빈혈 환자는 미리 철분제를 투여해 교정해야 한다. 무수혈 수술이 늘면서 JW중외제약의 페린젝트, 한국팜비오의 모노퍼 등 국내 고용량 철분제 매출은 2013년 18억7900만원에서 지난해 53억7200원으로 5년 새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복강경, 로봇 등을 활용해 수술 부위도 줄여야 한다. 영상의학과 의사가 참여하는 인터벤션 시술도 활용한다.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보며 가는 관을 출혈 부위에 넣어 지혈한다.

◆건강보험 혜택 확대 등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혈액관리만으로 20% 수준인 수혈률을 5% 이내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만성적인 혈액 수급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14일 기준 국내 혈액 보유량은 4.2일분으로 적정 보유량(5일분)에 못 미친다. 헌혈을 많이 하는 10~20대 인구가 줄면서 혈액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호주 등은 정부가 나서 혈액 적정량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인식이 높지 않다. 한 번 주사 맞는데 15만~20만원 정도인 고용량 철분제, 20만~30만원 정도인 셀세이버 비용은 모두 환자가 부담한다. 이정재 순천향대 서울병원 무수혈센터장은 “고용량 철분제 등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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