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인터뷰
“한국 AI, 美·中에 10년 이상 뒤처져… 단기성과 집착하면 기술벤처 못큰다”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20년 넘게 성공한 벤처도 실패한 벤처도 수없이 봐 왔지만… 한국의 벤처 환경은 세계 최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재들이 이쪽을 기피하는 것이고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벤처 1세대’인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52). 한국에서 KAIST 선배들과 새롬기술(1993년)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1999년)와 오피니티(2002년)를 공동 창업했고 구글코리아 연구개발(R&D) 총괄사장(2007~2014년)도 지냈다. 2015년 인공지능(AI) 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스켈터랩스를 세우고 다시 벤처 창업에 뛰어들었다.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만난 조 대표는 ‘전반적인 벤처 환경이 과거보다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이유로 “스타트업 창업자와 벤처캐피털(VC) 투자자 모두 단기 실적에 너무 연연한다”는 점을 들었다. 조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이 기술력을 쌓기보다 반짝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모바일 등의 영역에 집중했다”며 “투자자의 기대치도 그런 회사에 맞춰지다보니 창업 초기 단계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이런 풍토 탓에 오랜 기술 축적이 필요한 AI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이미 10년 이상 뒤처졌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IT 벤처업계를 경험했는데, 국내 스타트업의 현 수준은 어떻다고 보나.

“월드 클래스(세계적 수준)가 되려면 핵심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국내에서 ‘기술 벤처’를 찾아보기 힘들다. 구글에 들어가고 나서 바깥 벤처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챙겨보지 못할 만큼 바빴다. 그러던 중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사업(TIPS·팁스)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서 기대를 갖고 응했는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130~140개를 심사했는데 기술 벤처는 10개쯤밖에 없더라.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삼았다. 돈을 많이 벌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런 기술이 필요하니 이런 인력을 뽑자는 식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기업이 돈 벌겠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잘못된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벤처들이 그런 식으로 가다보니 투자자들의 기대치도 그런 회사에 맞춰지면서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투자자들이 다른 건 안 보고 매출만 보면서 ‘얼마 했느냐’ ‘왜 안 오르느냐’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꿈꾸며 의욕적으로 뛰던 창업자가 투자받은 순간 마음 고생에 폭삭 늙어버리는 사례를 너무 많이 목격했다. 한국과 미국 벤처 생태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스타트업 투자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스타트업 투자는 시드(초기 종잣돈)에서 시작해 금액이 커질수록 시리즈 A, B, C 등으로 이어지고 각 단계마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 시드 단계에서는 시제품을 만들거나 성공 가능성을 증명해보이면 된다. 시리즈 A에서는 제품을 완성해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의 반응을 본다. 정식 출시해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는 것은 시리즈 B 단계부터다. 여기서 잘 되면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도 있고, 시리즈 C로 넘어가 다른 시도를 할 수도 있다. 투자를 더 받아 시리즈 D, E, F까지 가기도 한다.”

▷국내 생태계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나.

“한국의 많은 벤처는 시리즈 A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받는다. 돈 버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단계인데도 말이다.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만 봐도 시리즈 A에 참여한 투자자는 경영진에게 ‘다른 생각 말고 일만 열심히 해라. 나머지는 우리가 돕겠다’고 한다. 지원팀을 꾸려 관리, 재무, 마케팅, 인사 등을 도와주고 창업팀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문화는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지켜보며 잘 해주지만 1년쯤 지나서도 잠잠하면 ‘왜 그러냐’ 따져묻기 시작하고, 돈이 더 필요하면 ‘너희가 알아서 해라’로 바뀐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그래선 안 되는 거다. 국내 모든 VC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업이 많이들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다.”

▷한때 ‘IT 강국’이던 한국이 왜 이렇게 됐나.

“자본력과 정부 지원정책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고,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AI 분야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공계 기피 현상의 여파로 전문인력 배출이 한동안 끊긴 영향도 크다. 물론 몇 년 전부터 AI에 대한 국내 관심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IBM, 바이두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다. AI의 기초를 알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문제에 맞게 적용해 경험을 축적하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전문인력이 풍부하게 양성돼 공부 많이 하고, 논문도 읽고, 공력을 쌓아야 한다. AI는 매우 광범위하고 학문적이라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분야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단기간에 쫓아갈 수 없다.”

2007년 구글코리아 기자간담회 당시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맨 오른쪽)와 에릭 슈미트 회장(맨 왼쪽)의 모습. 한경DB

▷격차를 좁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I 산업은 10~20명 안팎이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고 나머지는 그저 따라가는 구조다. 앞으로 세상은 이 사람들에 의해 움직일 것이고, 이런 인재가 없다면 회사도 나라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책, 교육, 기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투자를 통해 뛰어난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금처럼 당장의 수익성만 보고 판단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스타트업이 무르익고 결실을 맺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줘야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스타트업 취재팀 《edge》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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