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2> 경남 통영 죽도

남해안별신굿에서 무녀는 지모 또는 승방이라고 불린다.

여객선이 종착지인 죽도에 다가서자 갑자기 갑판이 떠들썩해진다. 메구(농악)판이 벌어졌다. 2019년 죽도 별신굿을 알리는 길놀이다. 해마다 정월이면 죽도에서는 남해안별신굿이 열린다. 승객을 내려준 여객선이 떠나자 올해는 별신굿에 앞서 점안식이 열렸다. 마을회관 팽나무 옆에 돌장승 한 쌍이 새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통영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부른다. 벅수에게는 아직 눈이 없다. 벅수에게 눈을 주는 점안식.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종교의식을 점안식, 혹은 개안식이라고 한다. 불상이나 불화 등도 점안식이 행해진 다음에야 영험함이 깃들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점안식이 끝나자 벅수는 이제 단순한 돌조각이 아니다. 섬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음악, 무용, 연극의 종합예술 별신굿

별신굿 굿판을 주도하는 것은 지모와 산이 들이다. 황해도 배연신굿판에서 무녀를 무녀라 부르지 않고 만신이라 하듯 남해안별신굿에서도 무녀를 지모 혹은 승방이라 칭한다. 산이는 연주를 하는 악사다. 큰 악사인 대사산이는 지모와 산이를 길러내는 큰 스승이자 세습무다. 견습 무녀는 젖지모, 큰 무녀는 대모라 칭한다. 오늘 굿판의 총연출자인 대사산이 정영만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82-4호) 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인데 거제, 통영 세습무가의 11대 무(巫)다. 거제 통영 지역의 단골판에는 박, 정, 노, 이씨 네 집안의 세습무가가 있었지만 이제 남은 집안은 정씨무가뿐이다.

통영과 거제 등 경상도 남해안에 어촌마을 곳곳에서 거행되던 대동굿 남해안별신굿은 매년 정월마다 죽도에서 펼쳐진다.

본격적인 굿판은 임시로 세워진 천막에 마련된 제청(祭廳) 안에서 부정굿으로 시작된다. 제청과 마을의 부정한 것들을 씻어내고 정결히 하는 굿이다. 죽도 별신굿이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남해안별신굿보존회와 죽도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한 덕분이다. 특히 정영만 선생과 정지홍 죽도마을 이장의 공이 크다. 남해안별신굿은 통영과 거제 등 경상도 남해안 어촌마을 곳곳에서 거행되던 대동굿이었다. 세습무의 굿의식과 공동체가 결합해 만들던 음악, 무용, 연극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마을에서 별신굿이 사라지고 없다. 죽도 별신굿도 한때 존폐 위기에 처했지만 2003년 섬 주민들이 남해안별신굿보존회와 손을 잡으면서 되살아났다. 현재는 문화재청과 통영시의 지원으로 존속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하는 대동제인 마을 굿들은 대부분 미신타파란 명목으로 궤멸되고 말았다.

별신굿은 무녀와 함께 굿판을 주도하는 악사를 산이라 칭한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굿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길다면 참 긴 공연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 굿이 이토록 재미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짜임새와 완성도가 높다. 제청에서는 가망굿, 제석굿, 탈놀이 등이 연달아 공연된다. 연희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행위 예술. 들맞이 당산굿은 당산 신을 제청으로 초청하는 굿이다. 가망굿은 날씨를 주관하는 가망신에게 바치는 굿이고, 제석굿은 가망신과 부부인 제석신에게 바치는 굿이다. 제석신은 마을사람들의 재수와 수명, 다산,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 오늘의 마지막 공연은 탈놀이다. 별신굿판에서 벌어지는 놀이문화 중 하나다. 할매탈, 승려탈을 쓴 이들이 나와 탈놀이를 한다. 할매탈을 쓰고 나온 광대가 죽도의 여신인 당산 할매의 말씀을 전한다. 중광대 놀이도 흥미롭다. 이제 죽도의 밤이 깊었다. 주민이나 외지에서 온 손님들만이 아니라 신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그래야 또 각자의 업무를 관장할 힘이 생길 것이니.

섬 주민들 300년 이어온 죽도실록 만들어

두 번째 날, 죽도의 새벽이 밝았다. 굿판은 6시부터 시작된다. 지모와 산이들이 당산에 올라가 산신제를 지낸다. 당산 할매에게 제물을 바치며 섬이 평안하고 무탈하도록 보살펴 주십사 기원을 드린다. 당산에서 내려온 지모와 산이들은 매구패를 앞세우고 마을 ‘골목’에도 제를 올린다. 골메기굿이다. 옛날 섬에 물이 얼마나 귀했던가. 그래서 생명수인 우물에서 우물굿을 하고, 재앙을 막아주는 벅수 앞에서 벅수굿을 하고, 마을 집들을 돌며 지신밟기를 해서 잡귀를 땅에 묻어버리고, 바닷가에 나와 풍어와 바닷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선왕굿과 용왕굿을 한다. 이제 용왕과 마을신들을 제청으로 초청하는 것으로 골메기굿이 끝나고 비로소 큰 굿이 시작된다. 지동굿이다.

죽도 섬 주민들의 교통수단인 소형 여객선, 죽도는 조선시대 공도정책으로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다.

제청에는 죽도 주민들이 집집마다 정성껏 차려낸 밥상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하지만 섬이 쇠락해가면서 한때 80개까지 차려졌던 밥상이 이제는 20여 개로 줄었다. 별신굿이 사라지면 수백 년 이어온 섬의 토속 음식들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개불꼬지, 문어초, 바지락 오가재비, 군소꼬지…. 별신굿이 아니면 대체 이런 음식들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으랴. 별신굿은 그냥 굿이 아니라 섬의 전통문화를 이끌어온 견인차다. 섬의 전통문화와 토속 음식. 사멸해 가는 섬을 재생시킬 처방전이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마땅하나 현실은 암담하다.

섬 주민들이 집집마다 정성껏 차려낸 밥상.

남해안별신굿은 모두 열두 거리나 되지만 이 지동굿이 포함돼야 큰굿이라 한다. 동네를 태동시킨 동대부신을 모시는 굿이다. 큰머리를 쓴 대모(큰 지모)가 주도한다. 굿판 상석에 앉은 마을 원로들 앞 탁자에는 오래된 궤짝 하나가 놓여 있다. 지동궤다. 삼도수군통제영 시절부터 마을에 내려온 중요한 문서들, 회의 기록들이 담긴 궤짝이다. 300년 동안의 기록이 모여서 마을의 역사가 됐고 규범이 만들어졌으니 참 보물 궤짝이다. 조선왕조실록 못지않은 죽도실록이다. 지동굿은 이 지동궤를 활짝 열어놓고 펼쳐지는데 손님풀이, 고금역대, 황천문답, 축문, 환생탄일, 시왕탄일 등으로 구성된다. 마을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마을 사람들의 근본을 되새기는 굿이니 어느 굿거리보다 중요한 큰 굿이다. 지동굿은 별신굿의 대모인 이선희, 공임정 두 무녀가 큰 머리를 쓰고 주도하는데 그 위엄이 압도적이다.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잔치 굿판

섬 주민들이 공동 작업한 김장김치.

주민과 관객들은 굿을 하는 대모에게 다가가 연신 소원을 빌고 덕담을 받는다. 사람들은 잠시의 위안만으로도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굿거리 하나가 끝나자 무녀는 관객들에게 제상 앞에 엎드리라고 청한다. 엎드린 사람들의 등을 마른 대구로 때린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의식. 귀에는 종이를 붙인 뒤 불을 붙였다 얼른 끈다. 몸에 붙은 재액들을 태워 없애는 정화 의식이다. 이를 별신굿에서는 공사 받는다고 표현한다. 무당은 치료사다.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치료사.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고 하는 일마다 잘되세요.” 대모의 음색에 신령이 깃들어 있으니 어찌 치유되지 않을까. 굿판은 나눔의 잔치다. 아픔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무사 안녕과 복을 빌어주는 잔치. 무녀는 마치 능란한 상담가 같다. 무녀의 음성은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공수요 신탁이다. 무녀가 손에 쥔 신장대를 통해 전해지는 신의 목소리다.

한국의 무속은 한강 이북은 강신무, 한강 이남은 세습무다. 무(巫·샤먼)의 특성은 엑시터시, 트랜스, 포제션이다. 엑시터시는 탈혼, 즉 영혼의 타계 여행이다. 트랜스는 의식 변화의 첫 단계로 단순 변환 상태다. 트랜스를 통해 두 번째 단계인 엑시터시나 포제션 상태로 발전한다. 포제션은 빙의다. 엑시터시 타입은 시베리아, 포제션 타입은 주로 남아시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의 강신무는 포제션 타입이다. 세습무는 단골이라고도 하는데 혈통을 따라 이어지며 단골판이라는 일정한 관할구역을 가진다. 단골은 반드시 신의 하강로인 신간을 갖추고 신의 메시지를 받지만 어떤 신을 모신다는 구체적인 신관은 희박하다.

제청에서 굿판이 끝나고 오늘 별신굿의 마지막인 ‘개갈이’가 시작된다. 개는 마을 앞바다다. 개의 물을 새롭게 갈아주는 굿. 섬 주민들과 산이들은 용왕님께 바칠 제물을 만선기를 단 어선에 가득 싣고 앞 바다로 나간다. 어선이 마을 앞 바다를 세 차례 돌며 제물과 음악을 바치는 동안 뭍에 남은 주민들은 용왕님께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고 또 빈다. 이로써 죽도 마을 대동굿인 별신굿이 끝났다. 옛날 섬이 삼치잡이로 융성하던 시절에는 별신굿판이 1주일씩 이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틀도 벅차다. 우리 섬의 현실이고 우리 전통문화의 아픔이다.

노인 30여 명 사는 쇠락한 섬

죽도는 면적 0.67㎢, 해안선 길이 3㎞의 아담한 섬이다. 조선의 공도정책으로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섬에 임진왜란 무렵 진양 강씨와 경주 정씨가 입도하면서 끊어졌던 섬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임진왜란 중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영 함선들이 화살을 만들 대나무를 이 섬에서 많이 베어 사용하면서 죽도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1945년 5월에 개교해 죽도 아이들 교육의 요람이던 한산초등학교 죽도분교는 1994년 3월 폐교되고 말았다. 학교는 이제 ‘재단법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 건물이 돼 연수원으로 사용 중이다.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아주 허물어지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죽도는 한때 통영에서도 부자 섬으로 유명했다. 어업에 일찍 눈 떴던 죽도 주민들은 1970년대 삼치를 잡아 일본 수출액 1억원을 달성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섬에 40~50척의 어선이 있었고 전복, 소라 등의 해산물도 풍부해 1973년 주민 516명일 때 제주 해녀가 120명이나 들어와서 채취하기도 했다. 채취한 해산물은 배 주인이 4할, 해녀가 6할을 가졌다. 1975년에는 죽도의 새마을금고 기금이 1억원을 돌파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전체 2등을 했으니 그야말로 돈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 죽도는 노인 30여 명만 사는 아주 쇠락한 섬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 섬들에는 유독 여신이 많은데 죽도의 주신 또한 여신인 당산 할매다. 당산 조모라고도 한다. 죽도 당산 아래는 자연적으로 생긴 200여 평의 못이 있는데 방죽못 혹은 당중못이라고도 한다. 이 방죽못은 여름철이면 당산 할매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안개 낀 여름날 새벽 방죽못에는 서기가 피어오르고 당산 할매 목욕하는 물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방죽못을 신성시해 늘 깨끗이 청소하고 소중히 여겼다. 옛날 어떤 사람이 오줌 바가지를 씻었고 또 어느 여인은 구정물을 부었다가 당산 할매의 노여움을 사서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당중못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른 적이 없었다. 주민들의 농사와 생활에 참으로 소중한 못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신성시했을 것이다. 인구가 많을 때는 땔감이 부족했지만 당산의 나무만큼은 손도 못 댔다. 2만 평의 당산이 잘 보존된 이유다. 죽도의 별신굿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터다.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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