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흠결 없는 제품만 내놓겠다"
장기 프로젝트도 과감히 중단
원가 승부…10년간 가격 2번 인상
임대료 지원 등 대리점과의 상생도

심성미 중소기업부 기자

“죽겠습니다.”

작년 5월 이후 침대업계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이런 얘기를 했다. 실제 악재에 악재가 이어졌다.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된 게 시작이었다.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어 까사미아 에넥스 코스트코 대현하이텍 씰리침대 등 11개 업체 제품에서 라돈이 나왔다. 라돈 위기를 피해 가는 듯했던 시몬스는 지난해 말 대리점주들과 장려금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홍역을 치렀다.

1위 업체인 에이스침대만 조용했다. 최근 에이스침대 고위 관계자에게 “요즘 어떻냐”고 물었다. 똑같이 “죽겠다”고 답했다. 다만 이유가 달랐다. “주문은 들어오는데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서 고민이다. 주문량을 감당하기엔 생산직 직원도 너무 모자란다”고 했다. 중고가 제품을 만드는 충북 음성 공장 증설이 완료될 때까지는 힘들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침대업계 악재에 소비자들이 피난처로 1위인 에이스침대를 택한 결과다. 불황이라는데 에이스침대가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배경이다.

이런 에이스침대의 실적과 고민에 대해 ‘라돈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운’ 때문에 나온 결과일까. 전문가들 판단은 다르다. 매트리스 제조회사의 기본 원칙을 묵묵히 지켜낸 결과라고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에이스침대는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다. 트렌드 변화에 신사업이니 뭐니 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1위 업체인 만큼 다양한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온다. 하지만 에이스침대의 품질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면 모두 거절한다. 라돈침대의 발단이 된 음이온 매트리스가 그랬다. 가장 먼저 음이온 매트리스를 제조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사진)은 음이온에 대한 과학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수면 시간을 기록하고 코를 골면 흔들어 깨우는 스마트베드도 국내 전자 대기업과 함께 연구했다. 하지만 제품은 내놓지 않았다. 심박 수 체크 등의 기능이 완벽하지 않아 자는 사람을 깨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흠결 없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은 제품 품질력으로 이어졌다. 브랜드 파워를 그렇게 키웠다.

가격을 이용한 편법도 쓰지 않았다. 에이스는 2010년부터 10년간 가격을 두 번 올렸다. 그리고 그 가격에 팔았다. 매년 또는 2년에 한 번 가격을 올리고, 세일을 통해 깎아주는 마케팅을 하는 업체와 달리 가격에 대한 신뢰성도 확보했다.

새로운 흐름인 상생에는 오래전부터 노력을 기울였다. 건물을 사거나 임대해 대리점이 들어와 영업할 수 있게 했다. 임대료는 주변보다 싸게 받았다. 작년부터는 이를 확대했다. 소규모 대리점 대신 도심 내 대형 매장인 에이스스퀘어를 집중적으로 늘렸다. 큰 건물을 사 지역 대리점을 입점시켰다. 수도권 지역 대리점들이 높은 월세로 인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임대료보다 싼 임대료로 대리점들을 도심 중앙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어려운 점주에게는 이자 없이 임대보증금을 지원했다.

에이스침대의 행보는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을 떠오르게 한다. 경쟁자인 영국 탐험가 로버트 스콧보다 늦게 출발하고도 더 빨리 남극점을 밟았다. 스콧 팀은 날씨가 좋은 날은 많이 가고, 안 좋은 날은 적게 갔다. 짐을 옮기기 위한 복잡한 전략도 세웠다. 하지만 아문센 팀은 하루 20마일만 가는 원칙을 지켰다. 또 다양한 변수보다 추위에서 버텨 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스콧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다 얼어 죽었고, 아문센은 최초로 남극을 밟은 인물로 기록됐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며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대다. 반사이익도 준비된 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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