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시장 간섭과 개입이 여러 갈래로 잦아지면서 부작용과 폐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방안’도 그런 경우다. 민간 금융회사들에 돈을 빌린 채무자들의 형편에 따라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정부가 탕감해주겠다고 나섰다. 금융사들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취지라면 사정이 정말로 어려운 저(低)신용계층에 집중해야 효과도 있고, 그나마 명분도 가질 것이다. 정부가 금융회사의 팔을 비틀며 빚탕감에 나선 것은 금융의 자율 훼손, 재산권 침해, 도덕적 해이 조장 등 논란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용카드업계와 대형 가맹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수수료 갈등(한경 2월 19일자 A14면)도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다. 지난달 말 소상공인 지원대책이라며 연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를 내리자 카드업계는 자구차원에서 500억원 초과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이다. 카드수수료까지 정부가 틀어쥐고 신용결제 시장을 통제하면서 비롯된 필연적 갈등이요 혼란이다.

이러니 서울시가 가맹점도 별로 나오지 않는 제로페이(소상공인 간편결제) 보급에 행정력을 쏟아 넣으며 신용결제 시장에 혼란을 부채질해도 견제하는 기관이 없다. 결제시장에 혼선이 커지고 카드업계에 대량 실직 조짐이 나타나는 게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정부가 신용취약계층 보호 차원에서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로 낮춘 뒤 대부업계가 대출의 벽을 높이면서 진짜 금융약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는 서민금융연구원의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수수료·금리 통제의 역설’ ‘관치 강화의 패러독스’ 같은 이런 현상의 본질을 봐야 한다. 그래야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정책이 잘못될 경우 그 대가가 건실한 소비자들, 즉 전체 국민에게 두루 전가된다는 특성이 어떤 분야보다 더한 것이 금융이다. 금융산업의 부침은 금융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전하고 선진적인 자본시장은 그 자체로 고소득의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고용의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나아가 제조업 등 다른 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선도한다. 금융이 ‘산업의 혈맥’으로 불리는 이유다.

개방과 국제화는 우리 경제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금융도 이 흐름에 앞서가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준용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행태는 이런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관심이 있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금융을 복지인양 여기고 심지어 ‘불로소득 지대’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정책들을 보면 토지공개념을 능가하는 ‘금융공개념’이라도 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노조까지 금융권 발목을 잡기 일쑤인 상황이다. 금융감독이 엄정한 심판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정치’와 ‘포퓰리즘’을 앞세운 통제로 탈선한다면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뻔하다. 금융업이 온갖 모험적 탁상정책의 수단으로 전락돼가는 현상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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