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그는 14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7세 때 고교를 자퇴했다. 세상을 배우기 위해 어머니 사망보험금을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도쿄를 떠난 다음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시골 마을 론다에 도착했다. 소설가 헤밍웨이가 사랑한 ‘절벽 위의 마을’이었다.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다. 비까지 내렸다. 작은 가게에서 빵을 하나 사 입에 넣는데 눈물이 났다.

1년을 떠돈 뒤 록 뮤지션을 꿈꾸며 돌아왔다. 그러나 1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서른 살 때인 2003년 창업해 컴퓨터 액세서리를 제작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마저 접어야 했다. “어차피 망할 거면 특이한 물건이나 만들어보자”며 돈을 빌려 초(超)절전형 선풍기 ‘그린팬’을 개발했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일본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의 창업자 데라오 겐(46) 얘기다. 그가 내놓은 ‘그린팬’은 지진으로 전력 불안에 빠진 일본 소비자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전력 소비를 10분의 1로 줄인 것뿐만 아니라 14장의 이중날개에서 나오는 산들바람, 나비 날갯짓 소리와 비슷한 13데시벨의 무(無)소음에도 매료됐다.

이 선풍기의 핵심 가치는 부드러운 자연바람이었다. 그가 거래처 미팅을 끝내고 파김치가 됐던 어느 날 선선하게 불어온 바람의 감각을 되살린 것이다. 이중날개 아이디어는 공장 장인들이 선풍기를 벽 쪽으로 틀어 간접 바람을 쐬는 장면에서 발견했다. 느린 바람과 빠른 바람을 동시에 구현하자는 생각은 아이들의 꼬리잡기 놀이를 보고 떠올렸다.

그는 식빵 굽는 토스터를 개발할 때에도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최대한 활용했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극찬을 받은 ‘더 토스터’는 여행지에서 먹었던 ‘빗물 속의 빵’을 재현한 제품이다. 기존 기계들이 빵을 바짝 굽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그는 작은 컵으로 물을 공급해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살려냈다. ‘눈물 젖은 빵’의 습도에서 맛의 비결을 찾아낸 것이다.

항아리 모양의 가습기 ‘레인’은 물통에 물을 채워넣는 대신 상부에 물을 붓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박물관에서 본 조선백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공기청정기 ‘에어엔진’을 만들 땐 가장 감각적인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을 찾기 위해 0.1㎜ 단위로 플라스틱 두께를 바꿔가며 실험을 거듭했다.

《0.1밀리미터의 혁신》의 저자 모리야마 히사코는 그를 “오감으로 느낄 만족을 제공하는 감각적 기업가”라고 평가했다. 이런 감각을 공유하기 위해 그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감명 깊었던 소설을 함께 읽기도 한다. 그의 ‘감각 경영’ 덕분에 발뮤다의 매출은 지난해 100억엔(약 1000억원)으로 15년 새 1850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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