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참여" 공약 위원장 뽑아놓고
대의원대회에선 조합원 뜻 반하는 결론

백승현 경제부 차장

2005년 2월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의원대회에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 복귀 여부를 묻는 안건이 회부됐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도입에 합의했지만 요구사항이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듬해 노사정위를 탈퇴한 지 6년 만이었다. 하지만 이수호 집행부의 안건 상정 시도에 단상은 소수 강경파에 점거됐고, 시너와 소화기 분말까지 뿌려지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노사정위 복귀는 무산됐고, 이수호 위원장은 불신임 논란 끝에 그해 10월 사퇴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9년. 시너와 소화기만 없었을 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8일 서울 화곡동 KBS아레나(88체육관)에서 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이번에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 여부가 안건이었다. 당초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다루려던 대의원대회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이후 재차 대의원들을 소집한 것까지도 과거와 똑같았다. 이날 회의에는 세 가지 수정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다. ‘무조건 불참’, 탄력근로제 확대·최저임금제 개편 중단 없이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불참’, 향후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 시 탈퇴한다는 ‘조건부 참여’ 등이었다.

결과는 모두 부결. ‘참여’도 안 되고 ‘불참’에도 반대하는 어정쩡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론이었다. 장장 10시간이 넘는 회의가 끝나고 밤 12시를 넘긴 시간, 1000명에 가까운 대의원들이 빠져나갈 즈음 장내는 “잠 못 들고 있을 문재인에게 민주노총의 불참 소식을 알리자”며 강경파들이 외쳐대는 구호로 가득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1년 넘게 공들여왔던 사회적 대화 ‘완전체’ 구성 시나리오는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4년 동안 민주노총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동계 안팎에서는 민주노총에 사회적 대화는 ‘트라우마’ 그 자체라고 말한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제까지 수용했지만 정부와의 신뢰는 깨졌고, 이후에도 복귀 여부를 다툴 때마다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과 2019년의 민주노총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민주노총은 2014년 10년이 넘는 찬반 논쟁 끝에 위원장 직선제를 도입했다. 말 그대로 특정 정파나 조직에 휘둘리지 않고 개별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보다 민주적인’ 민주노총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직선제가 조합원의 ‘참뜻’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고질적인 파벌싸움을 종식하자는 공감대의 발로였다. 효과도 컸다. 2017년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 최대 조직인 금속노조와 전교조에 비해 ‘마이너리그’인 철도노조 출신임에도 2차 투표 끝에 6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주목해야 할 점은 김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김 위원장을 선택함으로써 사회적 대화 참여를 이미 추인한 셈이다. ‘화백회의’ 또는 ‘봉건 영주체제’로 불리는 그들만의 독특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다고는 하나 전체 조합원의 직접 투표보다 강력한 권한을 위임받진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의원대회 의장석에 앉은 김 위원장에게서도 ‘지지율 66%’ 직선제 위원장의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다. “한 조직의 장(長)이라면 내부 시스템이 어떻든 간에 용기 있게 결단하고 결과에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민주노총의 ‘산파’이자 노동계 ‘대부’라는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말이다. 민주노총은 왜 직선제를 하는 것일까. 민주노총에 민주(民主)는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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