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축농증이군요. 항생제 몇 주 먹고 나서 경과를 봅시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부비동염(副鼻洞炎)이라고 부르죠.” “부비동염이라고요?” “아, 콧구멍 양쪽 옆에 동굴처럼 생긴 작은 골이 있는데, 거기에 염증이 생겨서 고름이 찼다는 말입니다.” 이비인후과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자주 오가는 대화다.

의료용어에는 어려운 한자나 생소한 외래어가 많다. 축농증처럼 일반인에게 익숙한 표현도 전문용어로 바꾸면 난해하게 들린다. 맹장염 역시 그런 사례다. 맹장 끝에 있는 작은 벌레 모양의 충수 돌기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어서 의학용어로는 충수염(蟲垂炎)이다. 한자어 대신 우리말을 섞어 ‘꼬리염’이라고도 한다.

서양의학 용어는 대부분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중국 한자와 일본어 번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독특한 조합으로 변형됐다. 갑상선과 갑상샘은 같은 기관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갑상(甲狀)은 방패 모양이란 뜻의 한자, 선(腺)은 샘의 일본식 용어, 샘은 순우리말이다. 최신 의학사전에서는 ‘갑상샘’으로 쓰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방패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래끼는 ‘눈꺼풀 종기’ 혹은 ‘맥립종(麥粒腫)’으로 불린다. 이 또한 동일 질환을 가리키는 다른 용어다. 한의학 용어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뇌졸중’은 뇌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생긴 증상인데 ‘중풍’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중풍은 안면신경마비, 파킨슨병, 간질까지 포함하는 넓은 뜻의 마비 증상을 뜻한다.

한자어와 영어가 뒤섞인 표현도 난해하기 그지없다. 할창(割創·cleaver wound)은 ‘찍힌 상처’, 절창(切創·cutting wound)은 ‘칼에 베인 상처’, 사창(射創·firearms wound)은 ‘총상’, 관통창(貫通創·penetrating wound)은 ‘뚫린 상처’라고 표현해야 이해하기 쉽다.

남북한 용어 차이는 더 심각하다. 북한은 차트를 ‘깔따’, 휠체어를 ‘밀차’, 마약중독을 ‘아이스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응급처치는 ‘1차 치료’, 진료하는 것은 ‘병 보다’, 엑스레이는 ‘뢴트겐’이라고 한다. 한약을 ‘고려약’이라고 하고 항문은 ‘홍문’이라고 하니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의학용어 7만6000여 개 중 90% 정도는 한글로 통일돼 있다. 그러나 7000개 이상이 제각각 쓰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용어집을 계속 다듬고는 있지만 완전 표준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고려대의료원과 삼성서울병원이 의료·간호용어 표준화 작업에 나섰다. 의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연구까지 협력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무엇이든 이름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kdh@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