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성장은 개발배급주의 발상
'묻지마 재정 투입' 최악의 선례
사업 부실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지역균형 발전(개발)에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기는 어렵다. 균형개발에 반대하면 상생이나 공존을 거부하는 것처럼 비친다. ‘균형’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힘 때문이다. 자연계의 생명활동은 모두 균형의 결과물이다. 인체의 신경계 순환계도 마찬가지다. 균형에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 전체 단어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균형성장과 불균형성장을 놓고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이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전자를 지목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려 균형이라는 단어를 활용한다. 자신도 모르게 균형을 이상적인 목표로 여기는 인식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16개 지방자치단체 인프라 사업에 24조원의 예산투입을 결정하면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균형발전을 앞세운 정치적 결정이었기에 정치적 지지도 상당하다. 나랏돈을 공짜로 받게 됐으니 해당 지역의 여야 모두 이의가 없다.

이번 결정은 멀쩡한 행정부를 세종시로 이전하고 공기업들을 전국으로 흩어버린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결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기도 하다. 그때도 논리는 지역 간 균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종시는 어떤가. 자족형 행정도시 맞나. “장관들이 세종시를 지키지 않는다”는 문 대통령의 질타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종시의 장관 공백은 장관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공기업들이 옮겨간 10개 혁신도시는 또 어떤가. 이주를 시작한 지 6년이 넘었는데도 가족 동반 정착률은 절반을 밑돌고 있다. 평일에 혼자 살다가 주말에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기러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상권이 제대로 형성될 리가 없다. 기업 유치도 말뿐이다. 초기 개발이득은 소수에 집중되고 강제 이전에 따른 국가적 손실은 다수의 국민이 떠안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는 세종시·혁신도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던졌다. 우선 사업성이나 경제적 지속성에 대한 검토 없이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방만 재정의 극치다. 사전에 효율성을 전혀 따지지 않았기에 나중에 탈이 나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혁신도시 인프라 개선을 위해 앞으로 4년간 4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 증거다.

실제 정부는 이들 사업에 무한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남부내륙철도(4조7000억원),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 대구산업선(1조2880억원), 당진 석문산단선(9380억원), 새만금 국제공항(8000억원) 등은 전액 국비사업이다. 운영주체는 도로공사나 코레일, 철도시설공단 등과 같은 공기업이다. 적자가 나면 이들이 모두 떠안아야 하고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사업 타당성 부족으로 이미 퇴짜를 맞은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광역철도사업을 제외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중앙정부가 통 크게 쏜 마당에 사업 시행자들이 굳이 사업비를 줄일 이유도 없다. 비용절감을 위한 행정 혁신은 일어나기가 어렵다.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건설현장 곳곳에 피어날 것이다.

정부가 전례 없이 밀어붙인 예타 면제의 부작용은 눈에 잘 띄지 않고 통계적 피해로 환원할 수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가만있기엔, 그 폐해가 너무 크다. 이번엔 탈락했지만 예타 면제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사업들도 중앙정부를 향해 북상할 게 분명하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분별한 ‘개발의 배급’이 초래하는 국가적 비효율과 낭비는 균형개발의 지역적 이득을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지적과 비판은 한두 번으로 족하지 않다.

jih@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