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첫 허용

정부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 4건 승인

도심 수소충전소 4곳 허용 '탄력'…연내 전국 86곳 설치 계획
DTC검사 13개 질환 추가…아파트 콘센트로 전기차 충전도
특례기간 2년 불과, 불확실성 커 대규모 투자는 쉽지 않을 듯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맨 왼쪽)이 1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11일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으로 승인한 4건은 산업 및 바이오업계의 숙원이었다. 수소전기차 충전소만 해도 기술 안전성 검증이 끝났는데도 국토계획법과 서울시 조례, 국유재산법 등 각종 규제에 묶여 도심지역 내에 설치할 수 없었다. 이날 열린 ‘제1회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12개 부처 장차관과 법률 및 소비자보호 민간 전문가 10명, 서울시 관계자, 규제 샌드박스 신청 기업 대표 등 30여 명이 참여한 대형 이벤트가 된 것도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국회에 수소충전소

눈에 띄는 ‘규제 면제’ 조치는 도심지역 내 수소차 충전소 허용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회 안에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회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및 국유재산법에 따라 충전소 설치가 불가능한 곳으로 분류됐다. 오는 7월 국회 안에 들어서는 수소충전소는 승용차 기준으로 하루 50대 이상 충전할 수 있는 250㎏ 규모다.

산업부는 국회 내 설치가 수소충전소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수소차를 8만1000대, 2030년까지 180만 대(각각 누적 기준) 생산하기로 했지만 여러 규제와 민원 때문에 전국 충전소는 현재 16곳(연구용 5곳 포함)뿐이다. 정부는 이번 특례를 바탕으로 연말까지 전국에 86곳을 설치하고 2022년까지 31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회 내 수소충전소 설치엔 여야 의원들도 적극 나섰다.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이 작년 말 ‘국회 내 설치’를 처음 제안했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수소경제포럼은 유인태 사무총장 등에게 국회 충전소 설치를 수차례 요청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 내 수소충전소가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저비용 전기차 충전기 확산될 듯

이번에 임시허가 승인을 얻은 (주)차지인의 ‘앱(응용프로그램) 기반 전기차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도 주목할 만한 기술이다. 기존 전기차 충전소 외 아파트 지하 주차장 등에 있는 일반 220V 콘센트에서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게 돼서다. 일반 전기차 충전기는 약 400만원의 설치비용이 소요되지만 이번 조치로 30만원 수준의 저비용 콘센트를 활용한 충전사업이 가능하게 됐다. 이 콘센트를 쓰면 일반 주차장 등에서 전기차를 충전하면서 사용한 공용전기 요금을 쉽게 납부할 수 있다. 심의위는 과금형 콘센트의 필수조건인 전력량 계량 성능을 검증하는 대로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 직접 의뢰(DTC: 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 항목도 확대돼 바이오 신사업이 가능하게 됐다. 종전에는 소비자가 민간업체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이 혈당과 혈압, 피부 노화, 체질량 지수 등 12개뿐이었다. 이번에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위암, 파킨슨병 등 13개 질환의 유전자 검사 실증이 허용됐다. 규제 샌드박스 신청 기업인 마크로젠은 당초 15개 질환의 실증특례를 요청했지만 심의위는 유전인자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유방암과 현재 치료약이 없는 치매는 제외했다.

‘규제개혁 동일 효과’ 추진

다만 이번 규제 샌드박스 시행이 신청 기업에만 국한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신청 기업마다 일일이 ‘규제 샌드박스 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의미다. 설사 동일한 사업을 시행하려고 해도 별도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향후 성과가 날 경우 비슷한 사례에 대해선 일반적인 허가 절차가 이뤄지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모든 기업이 동일한 규제혁신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기업들이 수십 건의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으나 단 4건만 심의 안건으로 올라간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신청 안건에 대한 법률 검토와 함께 관계부처 협의, 전문위원회 검토 등의 과정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산업부는 ‘더욱 혁신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산업계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 제도 개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달 말 제2차 규제특례심의위를 열어 추가 안건을 심의·의결하고 오는 4월 금융혁신법 및 규제자유특구법 시행 이후엔 규제 샌드박스 심의 분야 및 안건을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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