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국·쿠바가 겪었던
마르크스주의 고난과 궁핍
그대로 겪는 국민 분노 폭발

"독재자 마두로 물러나라"
국민들 정권 타도 의지 확고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중요한 순간

마두로 군부이익 보장 못해
과이도는 병사들 지지 받아

메리 오그레이디 <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최근 베네수엘라 국민이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국제사회도 이것이 중요한 순간임을 알고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는 지난 1월 23일 임시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미국과 20여 개 민주국가, 11개 남미 국가가 그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몇몇 정부들은 마두로에게 떠나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주 영국은행은 마두로가 요청한 12억달러어치의 금괴 인출을 거부했다. 1월 25일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뉴욕중앙은행과 미국이 보증하는 은행에 개설한 계좌를 사용할 권한을 과이도에게 넘겨줬다.

옛 소련이 무너진 이후로 이처럼 분노하며 결연한 의지를 갖추고 사회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나라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불러온 고난이 이처럼 뚜렷하게 전 세계가 볼 수 있도록 드러난 것도 그때 이후 처음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러시아, 중국, 쿠바와 또 다른 많은 나라에서 수백만 명이 겪었던 것을 경험하고 있다. 궁핍과 분노에 차서 그들은 사회주의를 끝내고자 한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뉴욕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미국에 사회주의 도입을 바라고 있다. 역사의 물결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은 과이도 정부에 2000만달러(약 223억원) 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했다. 확실히 필요한 조치다. 우고 차베스가 시작한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혁명은 영아 사망률을 높이고 시민들을 영양실조, 심지어 기아 상태로 빠뜨렸다. 수돗물과 전기, 화장실 휴지는 지금 사치품으로 분류된다. 베네수엘라는 초(超)인플레이션, 질병, 만연하는 범죄와 부패로 고통받고 있다. 가난하고 일할 곳 없는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흘러들어간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2002년부터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차베스가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인권과 자유 언론을 억눌렀을 때부터다. 그러나 쿠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군 최고 사령관을 설득하고 독재자를 고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번이 다르다면 마두로가 더 이상 군 고위 관계자들의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이도는 베네수엘라 병사와 중간급 관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파견함대 지휘관 중 일부도 더 이상 마두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다.

마두로 정권은 시위대를 마구 진압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의 피가 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군 수뇌부에 안전하게 정권을 이양할 방법을 제안했다. 괜찮은 제안이라고 여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 주말 유럽연합(EU)은 새 대선을 치르는 데 마두로가 2월 3일까지 응하지 않으면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지나치게 후한 조치다.

마두로는 그가 지난해 5월 재선출됐고 6년간 더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EU와 리마그룹(미주 14개국 모임), 주요 7개국(G7) 등은 지난해 5월의 선거 결과는 조작된 것이라며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마두로는 1월 10일 두 번째 취임식을 했다. 1월 4일 리마그룹은 마두로의 두 번째 임기는 불법이며 더 이상 진행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두로는 강행했다. 1월 10일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마두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우리는 마두로에게 새 대선을 치를 때까지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에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마두로는 이것이 미국의 음모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캐나다 자유당원이자 북미자유협정(NAFTA) 재협상을 놓고 미국과 정면충돌했던 프리랜드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하 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칠레, 브라질, 프랑스에 이르는 국제사회에서 마두로는 지금 인권 탄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독재자가 고립무원의 상태인 것은 아니다.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헤즈볼라가 그의 편이다. 쿠바 아바나는 베네수엘라의 무장 세력 및 독일 나치와 같은 돌격대원들을 활용한 방첩활동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구체적인 수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러시아가 준(準) 군사부대를 베네수엘라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서로 급이 다른 이들 간 싸움을 배제하기 어렵다.

마두로는 미국 외교관들에게 베네수엘라를 떠나라는 요청을 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청하고 있다. 지연 전략에 불과하다. 이 전략에 말려든다면 베네수엘라 야권은 고통과 더 강한 탄압만 받게 될 뿐이다. 차베스식 사회주의 복지정책인 ‘차비스모(차베스주의)’에 대한 올가미가 계속 조여들고 있다. 이 정권은 과거 올가미를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판돈이 훨씬 크다. 이 게임에서 지는 쪽은 크게 잃을 것이다.

원제: Venezuelan Spring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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