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자영업 리포트
(4) '생색내기' 그치는 정부의 자영업 대책

남대문 상인들 "상품권 결제 손님 한 명도 없었다"
명동서 온누리상품권 거래 최근 10배 가까이 급증

정부, 출범뒤 자영업 대책 다섯 차례 내놨지만 효과 없어
지역상인 돕는 지역사랑 상품권도 '현금깡' 수단 전락

정부가 설을 앞두고 전통시장에서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을 10% 할인 판매하면서 판매를 대행하는 은행마다 조기 품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0일 서울 충정로 농협은행 본점영업부 정문에 온누리상품권 판매 종료를 알리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정지은 기자

“온누리상품권이요? 올 들어 구경 한 번 못했습니다.”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서울 남대문시장. A한복집 주인 김모씨는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손님이 얼마나 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올 들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전통시장 가맹점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이다. 정부는 자영업을 살리겠다며 이번 설을 앞두고 4500억원어치 온누리상품권을 풀었다. 지난해보다 1500억원 늘린 규모다. 그러나 이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극히 드물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상품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품권 깡 열 배 늘어”

문재인 정부는 출범 뒤 자영업 대책만 다섯 번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다섯 번째 대책의 핵심은 자영업의 성장과 혁신이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과제로 내놓은 것이 온누리상품권 발행 확대다. 발행 규모를 지난해 1조5000억원에서 올해 2조원으로 늘리고, 2022년까지 총 10조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번 설을 앞두고선 4500억원 규모로 특별판매까지 했다. 지난 21일부터 31일까지 개인 구매 때 할인율을 기존 5%에서 10%로 높이고, 다음달 20일까지는 구매한도를 1인당 월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할인비용은 정부가 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설에는 전통시장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명절의 풍성함을 함께 느끼도록 온누리상품권을 대폭 늘려 발행한다”고 했다.

상품권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판매를 맡은 시중은행 지점마다 수억원씩 할당받은 물량이 거의 동났다. A은행 관계자는 “1인당 구매한도가 정해져 있어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상품권을 사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전통시장 상인들은 구경도 못 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의 B음식점 주인은 “이번 한 달 동안 온누리상품권으로 총 5만원 정도 들어왔다”며 “작년보다 더 줄었다”고 했다.

이는 상당수 상품권이 이른바 ‘현금깡’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50만원어치 상품권을 10% 할인받아 45만원에 산 뒤, 보통 5%가량 할인한 47만5000원에 되팔아 2만5000원을 챙기는 식이라는 설명이다. 서울 명동에 있는 L상품권 거래업체 관계자는 “최근 온누리상품권을 파는 사람이 평소보다 열 배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세금으로 깡 도와주는 셈”

10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사랑상품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상품권은 해당 지자체 내 가맹점에서 쓸 수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자영업자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올해 2조원어치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이번 설 전후(1~2월)로는 1250억원어치 상품권을 풀기로 했다. 지난해의 두 배 규모다. 5% 안팎 할인 혜택도 주기로 했다. 할인비용은 역시 정부가 감당한다.

30일 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온누리상품권을 팔겠다’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각종 지역사랑상품권을 팔겠다는 글이 수천 건씩 올라와 있다. 판매를 대행하는 B은행 관계자는 “누가 봐도 깡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다”며 “세금으로 깡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C은행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깡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며 “정부에서 팔라고 하니 팔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찝찝하다”고 털어놨다.

“미봉책으로 자영업 못 살려”

정부가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0%로 없애겠다며 들고나온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 ‘제로페이’는 아예 반응조차 없다. 이날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만난 D옷집 사장은 “지난달 구청에서 권유받아 설치했지만, 한 달 동안 제로페이로 결제한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그나마 제로페이를 설치한 소상공인은 전체의 8%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가 제로페이 유치에 각 자치구를 끌어들이면서 혼란만 더 커지는 모양새다.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부 관계자는 “강제 동원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서울시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제 동원에 반대하는 조합원 서명을 받아 박원순 시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하다”며 “이대로라면 자영업자 대책이 또다시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일규/정지은/임락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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