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내 공기청정기 귀하신 몸…"아침마다 쟁탈전 벌이기 일쑤"
미세먼지 피할 수 없다면 떠나라…"남몰래 해외근무 준비하죠"

미세먼지만 줄일 수 있다면…
딸 위해 유모차용 공기청정기…집안 창문마다 미세먼지 필터
외출할 땐 목걸이형 공기청정기

식물에 빠진 직장인들
수염틸란드시아·아이비·산호수 등 미세먼지 60% 줄여준다 입소문
"너도나도 책상에 두기 바빠요"

역세권 대신 '숲세권' 찾아 이사
교통 편의만 따지다 생각 바꿔…아이들 위해 숲·산자락에 관심
차라리 다른나라에서 살아볼까…이민준비카페 가입하기도

철강회사에 다니는 송 과장(39)은 최근 전기차를 알아보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2003년식 구형 쏘렌토는 폐차하기로 했다. 차를 몰고 다닐 때마다 ‘미세먼지의 주범’처럼 바라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폐차 결정에 한몫했다. 오는 6월부터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될 경우 2005년 이전에 생산된 모든 경유 차량에 대해 수도권 운행이 금지된다는 소식도 들렸다. 송 과장은 “차가 낡은 데다 환경개선부담금도 내야 했고 검사도 자주 받았다”며 “미세먼지도 줄이자는 차원에서 이번에 전기차를 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최 대리(29)는 거실과 안방에 설치할 대형 공기청정기 두 대를 구입했다. 주문하는 김에 소형 공기청정기 두 대도 추가했다. 하나는 딸 침대 옆에 놓고 하나는 출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쓰고 있다.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의 신조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건강을 해칠 정도의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평소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던 직장인들까지 하나둘씩 각자만의 방식으로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미세먼지를 둘러싼 김과장 이대리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엄 과장(34)이 다니는 중소기업에선 아침마다 공기청정기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고정형이 아니라 바퀴가 달린 이동형이어서 옮기기 쉽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밖에 나갔다 오면 아침에 가져다 놓은 공기청정기가 사라지기 일쑤다. 다른 팀이 공기청정기를 가져간 것이다. 엄 과장은 “공기청정기가 뭐라고 팀마다 얼굴을 붉혀가며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이 과장(34)은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면 잠시 자신의 차로 피신한다. 새로 산 차량용 공기청정기 덕분에 차안 공기가 사무실보다 더 쾌적하기 때문이다. 이 과장의 미세먼지 방지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 살배기 딸을 위해 유모차용 공기청정기를 장착한 것은 물론이고, 방충망에 붙여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먼지 필터도 집안 창문마다 붙여놨다. 이 과장은 “기관지 질환을 앓는 가족력이 있어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가족 전체가 죽을 맛”이라며 “외부활동을 할 때 쓰려고 목걸이형 공기청정기 구입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롱차 마시고, 화분 가꾸고

정유회사에 다니는 문 과장(43)은 막내 사원이 알려준 미세먼지 줄여주는 식물 리스트에 귀가 쫑긋했다. 수염틸란드시아와 아이비, 산호수, 관음죽이 미세먼지를 60% 가까이 줄여준다는 ‘고급정보’였다.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대부분 ‘설마 식물이 미세먼지를 어떻게 하겠어’라며 웃고 넘겼다. 다음날 아침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다. 문 과장뿐만 아니라 직원 상당수가 산호수 등 갖가지 미세먼지 저감 식물을 손에 들고 출근했다.

유통기업에서 일하는 김 대리(29)는 ‘차(茶)’를 통해 미세먼지에 대처하고 있다. 우롱차가 면역력 향상에 좋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출근 직후와 퇴근 직전에 한 잔씩 마신다. 미세먼지를 통해 발생할지 모르는 호흡기 질환이나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김 대리는 “우롱차 중에서도 발효도가 낮은 제품이 미세먼지 속 중금속과 납 성분을 배출해준다고 해서 지난주에 대량으로 주문했다”며 “환절기 건강에 작수차가 좋다는 얘기를 들은 뒤엔 이것도 한 상자 구매하려고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제조회사에 다니는 박 과장(35)은 최근 희소식을 들었다. 부서 차원에서 마스크를 대량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깜빡한 날에도 점심시간이나 퇴근할 때 마스크를 쓸 수 있어 부원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박 과장은 “그동안 갑갑하다며 미세먼지 마스크를 잘 안 쓰던 사람들도 비품실에 있다는 소식에 하나씩 꺼내쓰기 시작했다”며 “언제부턴가 마스크가 직원들 건강을 챙기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출퇴근 힘들어도 공기만 맑으면…

중견 화장품회사에 다니는 최 과장(36)은 요즘 동료들과 잡담할 때마다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작년 가을 인터넷 이민준비카페에도 가입했다.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유치원생 딸아이의 건강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최 과장은 “미세먼지가 지리적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면 해결책도 하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어 “최근 들어 이민준비카페 가입자 수가 대폭 늘었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가입 인사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과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럽권 해외주재원 발령신청도 해놨다.

두세 달 뒤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이 대리(31)는 요즘 ‘숲세권’에 꽂혔다. 혼자 살 오피스텔을 구매할 계획인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물을 볼 때 직장과 거주지가 가까운지 여부만 유심히 봤다. 하지만 발품을 팔며 부동산업체를 돌아다니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이 대리는 “부동산업체에서도 ‘요즘엔 주변에 숲이나 산이 있어 공기가 깨끗하면 젊은 부부들이 선호한다’고 하더라”며 “교통 편의만 생각해 대로변 옆 오피스텔을 주로 보러 다녔는데 요즘엔 주변에 숲과 산이 있는 곳들 위주로 구경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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