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부른 청와대 경제인식

'누가 경제를 왜곡하나'…경제계·학계 전문가 우려 목소리

2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윤종원 경제수석(왼쪽부터), 김수현 정책실장, 정태호 일자리수석, 황덕순 일자리 기획비서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 핵심 참모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청와대가 새해부터 ‘경제 왜곡’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0일 기자회견,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20일 간담회에서 연이어 드러난 경제 인식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회견과 김 실장의 간담회에서는 경기 침체와 고용 부진, 소득분배 악화를 대기업 등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그런 문제점이 개선됐거나 향후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경제계 및 학계의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정책 추진 방향과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도 눈에 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1) '투자절벽' 아니다?

투자를 왜 정책 1순위로 놨겠나…경기지표 보면 '절벽'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투자절벽’에 대한 해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2016~2017년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절벽이라는 표현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투자가 위축돼 보이는 것은 기저효과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투자절벽이 아니라면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투자 활성화를 왜 제1순위로 설정했겠느냐”며 “기저효과가 없지는 않지만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등을 감안하면 급격한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절벽 상황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설비투자는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연속 전월 대비 줄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9월부터 19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한 이후 20년 만에 최장기간 감소세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9~10월 반등하긴 했지만 다시 11월 -5.1%로 고꾸라졌다. 올해는 더욱 암울하다. 대부분의 민간 연구소는 올해 설비투자가 2% 안팎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2) 수출이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융위기로 급감하던 취업자, 수출 늘며 증가세 반전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출 증가가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문 대통령 스스로 나중에 한 말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1주일 뒤인 17일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보고회’에서 “국제 금융위기는 주력 수출산업 확대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초입인 2009년엔 취업자 수가 8만7000명 감소하는 등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악화를 겪었다. 하지만 이듬해 수출이 28.3% 늘면서 취업자 수는 34만5000명 증가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의 고용창출 효과가 줄어드는 추세긴 하다. 수출 10억원당 고용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나타내는 수출 취업유발계수는 2005년 10.1명에서 2014년 8.1명으로 줄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자동차 선박 가전제품 등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업종의 수출이 과거에 비해 부진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 공시가격 인상 따른 세 부담 많지 않다?

5억 이상 주택 보유세 폭탄…150% 증가 속출할 듯


김 실장은 공시가격 급등과 ‘보유세 폭탄’ 논란과 관련해 “공시가격이 급격히 오르지 않는 것 같다”며 “집값이 오른 만큼 최소한 (보유세가) 반영돼야 한다는 데 국민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평균적인 세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공시가격 5억원 이상 단독주택 보유자 중에서도 보유세 부담이 작년 대비 상한선(150%)까지 치솟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수입이 없는 은퇴 고령자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은퇴한 고객 중 한 명이 세 부담을 못 이길 것 같아 이달에 서울 잠실주공5단지(전용 76㎡) 집을 판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세 부담 증가가 올해 한 차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큰 우려다. 공시가격과 보유세 산출 때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매년 오를 예정이어서다. 여기에 더해 공시가격 등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역시 뛰게 된다.

(4) 소득주도성장으로 가계소득 올랐다?

하위층 소득 줄고, 상위층은 더 늘어…분배격차 심화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지난해 전반적인 가계 실질소득을 늘렸다”고 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3.0% 늘긴 했다. 문제는 소득 하위 계층일수록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했고, 상위 계층일수록 더 늘어 분배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점이다. 소득 수준 최하위 20%(1분위) 가계소득은 전년 대비 8.4% 줄었고, 상위 20%(5분위) 가계소득은 7.1% 늘었다.

전문가들은 가계 실질 가처분소득은 전체적으로 오히려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하고, 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 관점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가처분소득”이라며 “지난해 3분기 소비자물가지수(2.09%)를 감안하면 1~3분위는 실질 가처분소득이 3~12% 감소했고, 4~5분위는 1% 미만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5) 경제성장 혜택이 소수 상위계층·대기업에 집중?

한국 양극화 지수 156개국 중 30위…獨·日과 비슷


문 대통령은 “경제성장 혜택이 소수 대기업과 상위 계층에만 집중됐다”고 말했다. “한국이 양극화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국가”라고도 했다.

유엔인간개발보고서 2018년판을 보면 한국의 양극화 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 소득 양극화 비율을 나타내는 팔마비율(소득 점유율 하위 40%에 대한 상위 10% 비율)은 한국이 1.2로 독일, 일본과 같다. 156개국 중 30위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은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가계소득 비중은 낮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가계소득은 1980년 전체 국민총본원소득의 72%에서 2017년 61%로 줄고,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14%에서 25%로 늘었다. 하지만 기업의 총본원소득에서 감가상각과 직접세, 각종 부담금, 경상이전을 제외한 처분가능소득을 보면 기업 몫은 크게 준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가계소득 부진은 자영업 쇠퇴, 부동산에 과도하게 몰린 재산 등에 따른 것”이라며 “기업이 뺏어갔다는 인식은 적절치 않다”고 분석했다.

임도원/이태훈/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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