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흐트러졌던 국제 금값과 달러 가치 간 역(逆)비례 관계가 회복됐다. 지난해 4월 선진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인덱스가 88 선까지 떨어지자 금값은 온스당 1390달러대까지 급등했다. 그 후 달러인덱스가 97 선으로 오르자 금값은 ‘순간 폭락(flash crash)’이 우려될 정도로 118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주목되는 것은 작년 10월 이후 달러인덱스가 95~97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금값이 오르고 있는 점이다. 특히 12월 이후 금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달러 가치가 금값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 혼란으로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높아져 금 수요가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금이 과연 안전자산이냐’ 하는 점이다. 고물가 시대에 금과 같은 실물자산은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 선호됐다. 하지만 최근처럼 물가가 안정돼 있는 시대에는 금과 같은 독과점 시장은 작은 수요와 공급 요인이 발생해도 가격 변동성이 커져 안전자산이라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작년 10월 이후 국가별 금 수요 현황을 보면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사회주의 국가가 금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점이 눈에 띈다. 이들 국가의 외화 보유 구성 내역을 보면 금 비중이 높아진 반면 달러 비중은 떨어졌다. 탈(脫)달러화 움직임이다. 미국이 예의 주시하는 대목이다.

주도한 국가는 중국이다. 작년 12월 중국은 32만 온스에 해당하는 금을 사들였다. 2016년 10월 13만 온스를 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아르헨티나 합의대로 무역전쟁 유예기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달러를 버리고 금을 사들인 배경에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미국과의 마찰을 의식한 중국은 금을 사들인 목적이 ‘무역협상과 별도’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대(對)중국 강경론자들은 달러뿐만 아니라 미국 국채와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을 중국의 저항으로 보고 있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라는 패권국의 야망을 실천해 나가는 일환이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중국은 금을 사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다. 중국은 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 등 이른바 ‘3대 회색 코뿔소’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신용경색이 심해지자 지급준비율 인하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중국인의 해외 투자에 제한을 가하는 대신 세계 자산시장에서 차이나 머니를 회수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과의 무역협상 결과와 관계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의지는 강하다. 출범 이후 축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 이상으로 오르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수단은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카드다.

환율조작국에 걸리느냐 여부는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수차례에 걸친 내수부양책 효과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수출과 경기를 살리기 위해 ‘위안화 절하’라는 유혹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중국의 수출입 구조는 ‘마셜-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을 충족시킬 만큼 환율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화 평가절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인 자금 이탈이다. 3년 전에도 7000억달러 이상의 외자 이탈에 따른 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 3조달러가 무너질 위험에 놓이자 금융위기 가능성이 불거졌다. 외자 이탈 여건으로 본다면 지금이 더 악화한 상태다. 환투기 세력의 집요한 공격도 우려된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긴급외환보유액 기금(CRA) 조성, 신개발은행(NDB)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도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팍스 시니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전통화로서 위안화 기능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7위안 이상으로 절하하는 ‘시진핑 실수(Xi Jinping’s failure)’를 저지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매각 대금으로 금을 사들이는 것은 미국의 ‘위안화 절상(달러 매각→달러 약세→위안화 절상)’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팍스 시니카 야망을 실현해 나가는 중국의 이중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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