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위기다. 한국기업평가는 삼성을 제외한 5대 그룹(현대자동차 SK LG 롯데) 계열사 97개 중 12곳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경 1월14일자 A1, 3면).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1~2년 내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5대 그룹 계열사 중 부정적 전망 등급을 받은 기업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1개에 불과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0월 말 ‘부정적’ 전망을 받아, 2002년 이후 오르기만 하던 신용등급이 처음으로 강등될 위기를 맞았다. SK E&S, LG디스플레이, 롯데카드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것은 한국기업평가뿐 아니라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가 모두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5대 그룹 계열사의 등급 하향에 소극적이던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이 일제히 입장을 바꾼 것은 그만큼 기업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는 분석 대상 29개 업종 중 지난해보다 사업환경이 좋아질 업종이 하나도 없다고 봤다. 나이스신용평가는 42개 산업 중 반도체와 정유만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 15개 업종을 ‘부정적’으로, 나머지는 ‘중립’으로 봤다. 관련 업계에서는 제조업 위기 원인이 수익성 하락보다는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에 있는 데다, 국내외 여건마저 나빠지고 있어 어려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국내 제조업체 560곳을 조사한 올해 1분기 제조업 매출 전망 경기실사지수(BSI)가 85로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를 기록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1월 경제동향에서 “내수에 이어 수출까지 위축돼 경기둔화 추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외 여건은 어쩔 수 없어도 국내 기업 환경만이라도 개선하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권은 ‘경제 실패 프레임’ 탓에 정책의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대통령은 심지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까지 했다.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경제 인식이다. 기업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는데 새해 들어서도 정부 정책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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