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로 역사를 보는 영화들
허구를 통해 오해와 불신만 증폭
사실에 기반한 세련미 보였으면"

최중경 <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

영화 ‘덕혜옹주’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흐름이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조선시대 역사를 배울 때 무능한 지배층에 느낀 실망과 울분으로 잠 못 이루던 기억이 난다. 일본이 국제법을 어기고 조선을 강제 점령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무능한 조선 지배층을 미화할 수는 없다. ‘왕조의 위기’와 ‘특권양반의 위기’도 구별 못 해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청나라 원병을 불러들였고, 일본이 톈진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보내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길을 조선 스스로 열어줬다.

일본의 조선 강제점령은 잘못된 일이지만 “간악한 일본이 선량한 조선을 유린했다”는 식의 감정적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한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왜 일본은 강했고 조선은 약했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역사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언젠가 일본을 넘어설 역량을 기를 수 있고 한·일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역사를 감정적으로 다루니까 일본 측이 무례한 발언을 할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국력을 소모하는 일이 반복된다. 무례한 발언에 대해서는 절제된 표현으로 꾸짖으면 된다. 그래야 양식 있는 일본 국민을 우리 편에 있게 해 무례한 발언이 설 땅을 좁혀 나갈 수 있다.

뉴라이트 진영 일부의 주장처럼 일본의 지배가 한국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식의 논리 왜곡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전자회로 설계에 응용할 수 있는 ‘9차 직교라틴방진’을 세계 최초로 만든 문명국이기에 근대화를 추진할 자체 역량이 충분했고 이는 1960년대 이후 경제기적을 이룬 것으로 증명된다. 도쿄보다 먼저 경성에 전차를 들여온 조선이 성리학의 굴레를 벗고 실용의 길로 나가려는 찰나 식민지가 돼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근대화’가 추진됐을 뿐이다.

역사 영화는 오락성을 위해 픽션을 더해야 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수 있는 픽션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최근의 현대사 영화들은 감성을 자극하지만 사실에 입각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어 진영대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보게 할 소지가 크다. 세력 간 진영대치 논리로 역사를 해석하면 정책토론의 토양이 메말라 정책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고 합목적성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

최근 개봉된 ‘국가부도의 날’은 사실과 동떨어진 허구를 통해 정부를 매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중대사건을 다루면서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보다 픽션을 통해 오해와 불신을 부르는 것은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 해도 지나치다. 민족의 단합을 과시하며 세계를 감동시킨 ‘금 모으기 운동’의 의미를 폄하하는 듯이 연출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국민이 모은 금은 대기업이 부채를 갚는 데 썼다느니, 국제통화기금(IMF)의 가혹한 조건을 따르느니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선언하자는 한국은행의 주장을 따랐으면 ‘IMF 외환위기’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식의 설정은 사실과 너무 다르다. 금은 한국은행이 관리했고, 한국은행은 모라토리엄 선언을 제안한 적이 없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순간 삼류 깡패국가로 전락하는 게 국제 금융질서의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개방경제로 이행했음에도 1인당 국민소득, 물가 같은 대내균형에 집착하며 국제수지, 대외부채 같은 대외균형을 소홀히 한 거시경제정책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위기극복에 진력했던 정부 관료들을 형편없는 인격으로 묘사한 것은 부자연스럽다.

영화를 통해 특정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20세기 전반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름대로 재미를 봤지만, 모든 정보의 실시간 검색과 공유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탄탄한 사실과 정연한 논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역사 영화가 오래도록 높게 평가될 리 없다. 앞으로 개봉될 역사영화는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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