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대만의 '탈원전 정책 폐기' 국민투표 이끈 예쭝광 대만 칭화대 교수

원전으로 환경보호 '이핵양록'
原電 전문가 없는 반핵단체·정치권, 괴담 유포에 정확한 정보로 맞대응
대정전·극심한 대기오염 겪으며 대만시민들 '탈원전 폐기' 공감

서울 대기, 타이베이보다 나빠
미세먼지 확실하게 줄여주는 대안 에너지는 원자력뿐
재생에너지 비중 높이면 '정전폭탄' 안고 사는 격
대만선 환경운동가들이 원전 필요성 앞장서 주창

예쭝광(葉宗洸) 대만 칭화대 교수는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려면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대만에선 일부 원전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를 제외하면 원자력 관련 기업이 아예 없습니다. 기술 강국인 한국에서 원전산업을 왜 포기하려는 건지 의문이네요.”

작년 11월24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를 이끌어낸 예쭝광(葉宗洸) 대만 칭화대 원자과학원 교수는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원자력학회 주최로 열린 ‘탈원전 정책하에서 시민운동과 학회의 역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방한했다.

예 교수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고 정치인들이 부추겼다”며 “지난 7~8년은 미신과의 긴 싸움이었다”고 설명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견뎌낸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해일(쓰나미)로 침수됐으나 방사능 유출에 따른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게 정확한 ‘팩트’라는 것이다. 그는 “탈원전을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반핵단체 중에는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악의적 공격이 나올 때마다 정확한 정보로 맞대응했다”며 “특히 집권당인 민주진보당과의 싸움이 어려웠다”고 했다.

예 교수가 주도한 ‘탈원전 정책 폐기’ 운동의 핵심은 ‘이핵양록(以核養綠·Go Green with nuclear)’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 원자력으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다.

처음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열고 대중 순회 강연에 나설 때만 해도 호응이 크지 않았다. 여론이 바뀐 건 2017년 8월15일 대정전 이후다. 대만 전체가 일순간 암흑천지가 됐다. “전력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던 정부는 ‘정비’ 목적으로 세워뒀던 원전 2기를 급히 재가동했다. 작년 5월엔 일부 병원에 전기 공급이 끊길 정도로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탈원전 세력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결국 국민투표 결과 전체 유권자의 29.84%(유효 투표 참가자의 59.49%)인 589만5560명이 찬성하면서 ‘2025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전기사업법 조문(95조 1항)이 폐지됐다.

국민투표를 눈앞에 두고서도 난관이 있었다고 한다. 예 교수는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30만 명 이상의 서명이 필요한데, 서명서를 두 번에 걸쳐 냈더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무효라고 하더라”며 “선관위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행정소송을 낸 끝에야 국민 판단에 맡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표 막판에 나돌았던 유언비어도 애를 먹였다. 예 교수는 “투표 3일 전 반핵단체 등에서 전기사업법 폐지에 ‘NO’라고 답해야 탈원전 폐지가 가능하다는 가짜뉴스를 집중적으로 뿌렸다”며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리느라 진땀을 뺐다”고 했다. 그가 다른 과학자들과 2012년 결성한 ‘원전 유언비어 종결자(Nuclear Myth Busters)’란 단체가 큰 힘이 됐다.

예 교수는 “탈원전 정책 폐기에는 국내외 환경운동가들의 노력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에 막 도착해보니 미세먼지로 악명 높은 타이베이보다 숨쉬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며 “원자력이야말로 미세먼지를 확실하게 줄여줄 수 있는 대안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예 교수는 “대만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원전 대비 다섯 배 이상 비싼 데다 전력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래 전력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정부 전망은 과학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다”고 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대만에서 전력수요가 감소한 건 단 네 차례뿐이다. 2016~2017년엔 경제성장률이 1.5~2.6%였는데, 전력수요 증가율은 오히려 이를 초과하는 2.35~3.06%였다.

그는 “한국도 그렇지만 대만 역시 원전을 대체하려면 단기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며 “환경오염과 함께 전기요금 급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 교수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 시민들이 ‘정전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대만 원전이 사실상 사라질 것이란 일각의 주장에 대해 예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만 원전 3호기의 2개 원자로 사용기한이 2024~2025년 만료되는 건 사실이지만 조만간 연장을 신청할 것”이라며 “현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연장 승인을 내주지 않기엔 전력수급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설명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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