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신년사를 내놓았을 때 어리둥절해한 국민이 많았다. ‘원인제공자’가 오히려 아량을 베푼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특유의 ‘우기기 전술’이 분명하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이후 전개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주장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우리 정부는 과속행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조건과 대가 없는 재개의지를 매우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의 제기는 고사하고 김정은에게 맞장구를 쳐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제제재의 조속한 해결이 남은 과제”라고도 했다. 비핵화 행동의 진전이 없는데도 북한의 ‘통 큰 양보’가 나왔다며 국제사회에 제재완화를 주문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가뜩이나 북한 비핵화에 역할을 못 한다는 평가를 받는 외교부가 재빨리 치고 나온 점도 우려를 키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주말 한 강연에서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으로 대규모 현금이 건너가지 않는 우회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 발언도 나왔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정부 의지를 읽기는 어렵지 않다.

3년 전의 ‘개성공단 철수’는 북핵 불용에 대한 단호한 의지의 상징이었다. 그 결단으로 ‘북한 돈줄’을 차단하고, 유사시 민간인 인질 위험도 제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도와 외연 확대에도 기여했다. 개성공단을 핑계대며 대북지원을 합리화하던 중국과 러시아도 결국 유엔 제재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협상국면을 만드는 중대계기가 됐다.

‘현금 유입’을 금지하는 유엔결의를 피하는 방법으로 ‘임금 현물 지급’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물 지급도 북한 지도부에 숨통을 터주는 일인 데다 ‘현금화’ 가능성도 있다. 예외가 나오기 시작하면 제재대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국제사회가 용인하기 힘든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공조와 동맹 간 신뢰를 약화시키는 ‘편법’을 외교책임자가 공개언급한 게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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