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고위 인사들이 앞다퉈 기업 챙기기에 나섰다. 그제 이낙연 국무총리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했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상의회관에서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신년회(2일)에 4대 그룹 총수를 처음 초청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기업인 120여 명을 청와대로 부른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도 기업 방문이나 간담회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각 부처 장관들은 소관 대·중소기업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당·정·청 최고위급 인사들이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경제 회생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정부가 친(親)노동 정책과 적폐청산에 몰두하는 동안 기업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은 게 사실이다. 경기하강 신호가 뚜렷한데도 “기승전 기업 기(氣) 살리기가 개탄스럽다”던 청와대였다. 뒤늦게나마 ‘경제 행보’에 나서 기업들은 물론 국민도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난을 시인하면서도 ‘정책 불변’을 선언해 기업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투자 활성화와 혁신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부작용이 확인된 소득주도 성장을 고수하겠다는 상반된 신호여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반응이다. 범정부적인 ‘경제 행보’가 투자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로선 아무리 어려움을 호소해도 정부가 변하지 않는데, 당·정·청 인사들의 방문이나 면담이 달가울 리 없다. 연초 가뜩이나 분주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고, 의전에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경호가 따라붙는 총리가 방문할 때 기업에선 미리 도상연습을 해가며 준비하는 게 보통이다. 이번에 삼성전자에선 고위 경영진이 출장 일정을 조정해가며 급히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관이 휴무일에 공장 방문을 통보해와 비상이 걸린 사례도 있다.

정책 변화가 없다고 못박아 놓고, 기업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이벤트이자 ‘민폐’나 다름없다.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선 형식적인 기업 ‘달래기’보다 기업 ‘때리기’부터 멈추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투자 애로가 무엇인지는 이미 경제단체들이 수없이 정부에 제출한 건의서에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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