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일정 기간 또는 일정 지역 내에서 면제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 계획안을 확정하면서 서울 여섯 곳의 수소충전소 설치 요청을 ‘규제 샌드박스 1호’로 허용키로 했다. 샌드박스를 통한 ‘선(先)허용, 후(後)규제’로 신산업 육성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오는 17일 공개할 예정인 샌드박스 적용 후보군에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이 첨예한 규제가 얼마나 포함될지가 관건이다.

우리나라가 규제개혁에서 경쟁국들에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신산업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는 ‘암반규제’들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없애느냐가 중요하다. 정부가 상대적으로 쉬운 규제들만 골라 샌드박스 성과로 삼으려 한다면 이 제도의 실효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이 앞다퉈 하고 있는 혁신 실험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승차공유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투자개방형 병원, 원격의료 등이 다 그렇다. 그런데 샌드박스 적용을 앞두고 정부 내에서는 승차공유, 투자개방형 병원, 원격의료 등 시민단체와 이익단체 등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규제들을 후순위로 미루려는 조짐이 엿보인다. 출발 단계에서부터 샌드박스에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신산업 제품이나 서비스가 샌드박스로 규제 면제를 적용받더라도 어디까지나 제한된 기간의 ‘임시적 조치’에 불과하다.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샌드박스 신청을 받아들이면 그 효력은 2년이고 1회에 한해 2년 연장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샌드박스 문을 두드리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2~4년만 내다보고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다. 샌드박스 이후의 불확실성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규제 하나를 신설하면 기존 규제 두 개를 없애는 ‘규제비용총량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 국가들에도 뒤처진 혁신 실험을 만회하고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규제 샌드박스를 뛰어넘는 대담한 규제개혁 정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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