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북미간 신뢰 깊어지면 그때 전반적 신고 통해 비핵화"
2차 북미회담서 신고문제 미루고 '영변 핵시설 폐기-美상응조치' 조율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 '선(先) 신뢰구축-후(後) 핵 신고' 로드맵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와 관련한 질문에 "과거에는 북한의 신고부터 먼저 하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신고의 검증과 진실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하다가 결국 실패하는 식의 패턴을 되풀이했다"면서 이번에는 다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미사일 시험장 폐기 등의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 등 북한의 조치들을 언급한 뒤 "그런 것을 통해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뤄지고 신뢰가 깊어지면 그때는 전반적인 신고를 통해서 전체적인 비핵화를 해나가는 프로세스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가능한 프로세스를 놓고 북한이 어떤 구체적 조치를 취해나가고, 미국이 어떤 상응조치 취할지를 마주 앉아 담판하는 자리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이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롯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합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신뢰가 쌓이면 핵 신고와 검증 등 더 높은 난도의 비핵화 프로세스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그간 핵 신고에 대해 "신고서란 우리더러 자신을 타격할 좌표들을 찍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핵 신고를 둘러싼 북미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는 지난해 하반기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도 지목됐다.

따라서 비핵화의 진전을 위해 핵 신고의 '시점'에 있어서는 다소 유연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해 '핵무기 목록 신고'는 일단 뒤로 미루고 북핵시설의 검증된 폐쇄 등으로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핵화 전 과정의 '순서 배열'에서 핵 신고의 위치를 유연하게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선 미국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대북 강경파로 꼽히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 NBC 뉴스와 인터뷰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 중에서 (현 단계에서) 북한의 전면적인 핵 신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핵 신고를 비핵화 1단계 조치로 상정함으로써 교착 국면 장기화를 방치하는 것보다는 당장 실현가능한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묶어 이행함으로써 비핵화의 '수레바퀴'가 우선 굴러가게 하자는데 미국 당국자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신뢰를 쌓기 위해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의 예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IRBM(중거리탄도미사일) 폐기 및 관련 생산 시설의 폐기 등도 언급해 주목된다.

ICBM이나 IRBM 등 현존하는 핵무기 운반수단의 폐기는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맨 마지막에 다뤄질 것으로 예상돼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은 북한이 보유한 ICBM 일부를 해외로 조기 반출하는 방안을 1차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제안이 아직 취소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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