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문제 잘 해결 후 북아일랜드 문제로 꼬인 브렉시트
구도 복잡하고 쟁점 복잡해져 '영국만의 크리켓'으로 전락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는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유럽이나 영국은 축구나 여행의 연관 검색어일 뿐 정치나 경제를 논할 때는 한국인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렉시트 구도가 복잡하고 상황이 수시로 변한다. 영국 내에서 정파별로 목소리가 제각각인데다 1993년 EU 창립 이후 25년만에 처음 해보는 이혼 협상이어서 진행 과정도 중구난방이다.

이해하기도 어렵다. 우리 말로 옮기기 애매한 하드보더(hard-border:강한 국경통제)나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 같은 용어가 등장해 “뭔 소리야”라는 반응이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유럽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수 있어 브렉시트 뉴스는 매일 쏟아져 나온다. 브렉시트 시행일(3월29일)이 다가오고 합의안 영국 의회 비준 같은 중요한 절차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브렉시트가 검색어 상위권에도 오른다.

그래서 ‘영국만의 크리켓’ 같은 취급을 받는 브렉시트를 한국인도 규칙은 알고 보는 야구 정도로 받아들이도록 브렉시트 쟁점을 하나씩 뜯어본다.

○위자료로 보면 아름다운 이별

브렉시트는 한마디로 이혼 협상이다. 좀더 원색적인 표현으로는 정말 희한한 결별이다. 일반적으로 이혼 협상에선 재산권 분할과 양육권 문제가 주요 쟁점이다.

브렉시트라는 이혼협상에선 예외다. 돈이 걸린 재산권 분할에선 하나도 안 싸웠다. 처음엔 위자료에 해당하는 분담금 문제로 다투리라 예상했지만 싱겁게 끝났다. 양측간 탈퇴협정서는 585쪽으로 분량만 많았지 논란은 크게 없었다. 주요 합의 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리 돈으로 12조원이 넘는 89억파운드 위자료 내고 영국이 EU와 헤어지겠다는 게 첫째다. 둘째는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 2020년말까지 과도기를 두자”는 것이다. 즉, 전환기간을 두고 하드 브렉시트가 아닌 소프트 브렉시트하자고 합의했다. 세번째는 이미 상대 국가에 나가 있는 EU 국가 국민들, 영국인들 기득권 인정해주자는데 이견이 없었다.

두번째 합의서는 미래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이혼으로 치면 양육권 문제 등을 담았다. 제대로 얘기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분량도 26쪽으로 적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정치적 선언문에 불과했다. 여기에서도 별반 갈등이 없었다.

○처제나 도련님 문제가 쟁점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이혼 당사자인 영국이나 EU 문제가 아니라 영연방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에서 터져나왔다. 부부가 아닌 처제(도련님) 관련 내용이 이혼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성평등 관점에서 보거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테레사 메이 총리를 생각하면 처제가 아니라 도련님이라고 하는 게 더 맞지만 여기선 편의상 처제라고 표현한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처제나 도련님 뻘인 북아일랜드가 골칫거리로 떠오른 사연은 이렇다. 한마디로 독특한 영연방의 역사와 정치적 역학 관계 때문이다. 북아일랜드는 이른바 벨파스트 협정이 있던 1998년 아일랜드로부터 독립해 영연방의 일부가 됐다. 영국과 EU 구도로 보자면 북아일랜드라는 처제가 언니(EU)와 형부(영국) 이혼 후에도 본인 원래 집(아일랜드 또는 EU)이 아닌 형부(영국) 집에 가서 얹혀 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그 형부가 언니와 헤어질 때가 되니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영국 집권당인 보수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10석)은 지금처럼 아일랜드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하면서 영연방에 남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혼(브렉시트) 이후에도 우리 집(아일랜드 또는 EU)에 편하게 왔다갔다 하면서 형부(영국)네 집에서 살게 해주세요”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게 바로 매번 들어도 잘 이해가 안되는 ‘하드보더’와 ‘백스톱’이다.

○크리켓으로 전락한 브렉시트

하드보더와 백스톱이 브렉시트의 체감 난도를 높인 주범이다. 동시에 브렉시트를 영국만의 문제로 느끼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지금처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에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두 국가 간에 엄격한 국경 통제(하드보더)를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안전지대(백스톱)를 두자는 게 골자다. 마감 시한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이다. 즉, 브렉시트 이후에도 사람이나 물건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을 현재와 같이 아주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영국이 EU와의 관세동맹에 잔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점 때문에 브렉시트가 복잡해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처제들 문제가 고스란히 부부 간 이혼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완전한 결별, 즉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보수당 내 상당수 의원들은 “관세동맹 잔류가 일시적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반면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세력들은 “EU로부터 관세동맹은 영원한 게 아니라는 확약을 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그리고 EU는 “영국과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고 있다.

영국이 하드보더에 예민한 건 결국 나중에 영연방의 영토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영국이 일시적인 관세동맹에서 빠져 나올 때 북아일랜드는 계속 EU에 남겠다고 하면 영연방의 실제 영토는 사실상 영국 본토로 축소된다.

이번 이혼협상에서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하드보더가 핵심 쟁점이 됐기 때문에 EU는 크게 근심을 덜었다. 영국만의 문제로 싸우고 있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다른 회원국들이 추가 이탈할 것이란 걱정을 다소 덜어서다. 반면 영국은 자국만의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브렉시트는 규칙도 모르는 크리켓으로 생각하게 됐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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