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sy@hankyung.com

“검찰이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여론전을 해야 하나요?”

한 현직 고위 법관이 11일 검찰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를 앞두고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 일정을 이례적으로 일찍 발표한 후 언론에선 일제 징용소송 개입 혐의와 관련된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해당 소송 주심이던 김용덕 전 대법관이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전해 들었다고 검찰 수사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김 전 대법관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쪽으로 미리 결론 내렸다는 내용의 보도도 있었다. 김 전 대법관이 재판연구관에게 “기존 판결이 잘못이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회사를 상대로 직접 청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검찰 진술 내용인 만큼 검찰이 흘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피의 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피의 사실 공표는 여론을 흔들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표 사실이 법정에서 뒤집어지는 사례도 많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공표 내용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대법원의 심판권은 전원합의체에서 다루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이 대법원에 계류된 재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건 직권 남용이 아니다”(한 현직 고위 법관)는 지적도 있다. ‘논리 개발’에 대해서도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현직 법관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인 만큼 반대 논리를 개발하고 비교해보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그게 재판연구관들이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법리를 갖고 법정에서 다투면 될 문제를 여론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피의 사실 공표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게 돼 있다. 하지만 검찰이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언젠가 검찰의 ‘피의 사실 공표’가 적폐 청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지금의 수사팀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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