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여시재 이사장 '국가운영과 경제' 주제 강연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경영 조찬
'금융 빅뱅' 준비해야 하는데, 現 정책은 기득권 공고화할 뿐

기업지배구조 1 대 1로 처리해선 정부 백전백패…제도적 접근해야
산업 정책, 발상의 전환 필요…민간 자율성 부여 명확히 해야
“금융의 빅뱅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같이 규제에 둘러싸인 상황에선 금융산업은 숨이 막혀서 안 됩니다.”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사진)은 9일 서울 역삼동 노보텔앰배서더강남에서 열린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경영자 조찬회 강연에서 “지금의 금융 정책은 기득권을 부여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이사장은 1990년대 말부터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으로 재직하며 경제위기 극복의 최전방에 섰던 인물이다. 2016년부터 국가 미래전략을 고민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날 ‘국가운영과 경제’를 주제로 최근 국내외 현안과 국가 전략에 대해 강연했다. 조찬회에는 허인 국민은행장,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장, 윤영각 아시아자산운용 회장, 김준철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대표, 이찬의 삼천리 부회장, 이종태 퍼시스 회장 등 금융계를 비롯한 각계 경영자가 참석했다.

이 이사장은 “정부에서는 부동산 신탁회사를 최대 3개까지 더 늘려준다고 하는데 이건 단순히 라이선스(면허) 배분에 불과하다”며 “기득권을 공고화할 뿐”이라고 재차 지적했다. 그는 “이럴 거면 모두에게 시장을 열고 다 풀어버리는 게 낫다”며 “정부는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것만 들여다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서는 원리원칙을 명확히 제도화함으로써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낮춰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재벌 기업을 1 대 1로 처리하려 해서는 정부의 백전백패로 끝날 뿐”이라며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기업 관련 수사에서 정부는 불확실성을 유발하며 혼동을 주고 있다”며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기업에 각자 알아서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기업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글 같은 기업이 국가 정책의 산물인가요? 아닙니다.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우리도 이제 정부가 직접 키울 산업을 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움직이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때가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민간에 자율성을 주겠다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세대 간 부(富) 이전의 합리적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이 이사장은 “정부가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자원을 부드럽게 다음 세대로 넘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승계 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자산이나 자본이 밖으로 나갈 때는 세금을 부과하지만 기업 안에 머무를 때는 비용을 치르지 않고 아버지와 자식 간 승계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대를 올라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인이 됩니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고령화 저출산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그는 “고령화가 향후 두 세대에 걸쳐 큰 재정부담을 안겨줄 것”이라며 “문제는 부담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정부조차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기초노령연금 몇푼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정부에도 없을 것”이라며 “그래서 국민연금이라는 수단에 매달려 자원이 고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략적 수단으로 내세웠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저출산 문제 역시 정부 차원의 큰 그림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출산은 젊은 층이 각자도생한 결과입니다. 젊은 층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살기 어렵고 아이들을 키우는 비용도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죠. 정부가 이런 추세에 단순히 금전적 지원을 하다가는 재정 낭비만 일어날 뿐입니다. 젊은 층이 안심할 수 있도록 육아를 가족에서 국가적 차원의 목표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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