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구호에 휩쓸린 채
과학적 사실마저 외면한 脫원전

신재생에너지는 난맥상에 봉착
원자력 생태계는 1년 만에 붕괴

전기요금 인상은 둘째
에너지 안보는 어떻게 지킬 건가"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

탈(脫)원전을 선언한 지 1년여가 지났다. 이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한마디로 탈원전이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라도 핵심은 탈원전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이슈는 탈원전이라는 말뚝을 가리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고도 산업국가인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다. 탈원전은 지금까지 어렵게 유지해오던 에너지 체계를 한 번에 뒤흔들었다.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관철하겠다는 의지는 정치 중립이어야 할 에너지 정책을 압도했고 과학적인 사실마저 쉽게 외면하게 했다.

에너지 문제는 조급하게 마구 다뤄서는 안 된다.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고 비전문가의 구호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잊은 대가가 하나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탈원전 계획을 만든 지 불과 한 해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탈원전을 위해 첫 번째로 한 일은 미래의 전력 수요를 낮게 예측하는 것이었다. 향후 13년 동안 전력피크(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아지는 순간)가 연평균 1.3% 증가하는 것으로 잡고 원전을 줄여도 괜찮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첫해부터 전력피크 증가율이 무려 9.3%를 넘었다. 폭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예측과 너무나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정하려는 어떤 노력도 아직은 없다.

두 번째 문제는 한국전력공사가 적자기업으로 돌변했다는 점이다. 원전 가동률을 큰 폭으로 줄인 탓이다. 한때 90%를 웃돌던 원전 가동률은 50%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당장은 천연가스와 석탄 발전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그 기간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발전 비용이 대폭 늘어났다. 지난 정부 때 10조원 이상 흑자를 내던 한전은 한 해 사이에 적자 상태로 추락했다. 적자는 곧 부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간 걷잡을 수 없이 부채가 늘어날 것이다.

공기업인 한전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기지 않으려면 전기 요금을 인상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스스로의 발목을 묶어 놓은 바 있다. 탈원전을 해도 전기 요금을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문서로 그 근거를 밝히기까지 했다. 어찌하려 하는가?

세 번째 문제는 허황하게 늘려 잡은 신재생에너지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각지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 계획이 반대에 부딪혀 있다. 육상이든 수상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양광이나 풍력을 계통에 연결하기 위해 새로 고압선을 까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또 간헐성(재생에너지 자원을 활용한 전기 생산이 날씨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좌우되는 특성)을 해결하려고 만든 전력저장장치마저 한 해 동안 무려 16곳이 화재로 전소됐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술적 제약이 뚜렷하고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맹렬히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불통이다.

네 번째 문제는 원전을 없애고 난 다음에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원전을 대폭 줄이고 우리는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그냥 침묵할 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원자력산업이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다. 원자력산업엔 한국수력원자력만 관계돼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고 운영하며, 부품과 연료를 공급하고, 정비하고 안전을 점검해야 하는 생태계가 있다. 더 나아가 폐로(廢爐)도 해야 하고 사용후핵연료를 다뤄야 한다. 예상한 것보다 원자력 생태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인력부터 떠나고 있다. 신규 원전을 더 짓지 않더라도 생태계가 무너지면 원자력은 위험해진다. 그야말로 위험하다. 돈도 없고 인력도 없는데 우리가 갖고 있는 원전은 남은 기간 동안 누가 부품을 공급하며 안전을 점검한다는 말인가? 어떤 전문가가 살아남아 미래에도 안전을 지켜줄 것인가? 우리는 이게 더 두렵다.

에너지 전환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다. 거칠고 조악한 정치적 고집이나 비과학적인 몽상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유연하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없다. 에너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에너지 안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