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소득주도성장은 대증요법, 최저임금 인상은 변죽만 울리는 정책"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생각 여전히 달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입니다. 두 사람은 수십년 간 같은 듯 다른 길을 걸었죠. 두 사람 모두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 방향은 판이합니다. 장 전 실장은 재벌개혁을 강조했고 장 교수는 해외투기자본 규제에 방점을 뒀습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장 교수는 주로 대학에서 연구 활동에 집중하면서 대안담론 마련에 주력했죠. 이에 비해 장 전 실장은 사회운동이나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이론을 접목하려 애썼습니다. 그만큼 문제 해결 방식에 차이가 나 논란과 논쟁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공산주의자 집안이라고 그 집안 사람이 모두 공산주의자여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는 장 교수의 말이 두 사람의 간극을 대변해주죠.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인상을 두고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장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1기 경제라인의 핵심으로 두 정책의 수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장 교수는 “두 정책이 잘못됐다”며 비판했습니다.

장 교수는 최근 케임브리지대 한 강의실에서 영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경제 현실에 비춰 소득주도성장은 대증요법에 불과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변죽 울리는 소리”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그는 “단순히 분배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고 편의점 직원이 1000원 덜 받아 경제가 어려워진 게 아니다”며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20년간 투자 안해 주력 산업의 좋은 일자리가 무너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장기 투자를 늘려 신산업을 키워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최근 연락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장하성 교수 나이가 10년 위라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같은 집안 사람인데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르냐고 하는데 그건 연좌제적 발상입니다. 공산주의자 집안이라고 그 집안 사람 모두 공산주의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장하성 교수는 주식시장을 통해 재벌을 통제하자고 생각하고 저는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를 바꾸자는 생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것으로 보면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수십년째 생각이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서로 논쟁하면 되는 것이지 변할 이유가 있나요. 진영 논리에 빠져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나라에서 좌파 정책으로 보는 게 다른 나라에선 우파 정책으로 인식됩니다. 한국에선 산업구조 개편하자고 하면 우파정책으로 여기지만 영국에선 산업정책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처음 시행했기 때문이죠. 또 복지국가를 처음 만든 사람은 보수정치의 대가인 독일의 비스마르크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유럽에서도 복지정책하면 보수주의자로 봤는데 한국에선 여전히 빨갱이라고 합니다.그래서 제가 산업구조 개편하면서 복지도 강화하자고 주장하면 좌파 우파 모두 저를 공격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높아 단기적으로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문제는 대증요법이라는 점입니다. 몸이 약해져 있으니 영양제 주사 하나 놔준 건데요. 영양제 맞았으면 운동도 하고 식생활도 개선해야 몸이 튼튼해지죠. 그런데 여전히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한다는 얘기는 없는 게 문제죠. 최저임금 인상도 미국 사례만 보고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제대로 모르고 시행한 정책 같습니다. 미국 자영업자 비율은 6%지만 한국은 25%입니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빨리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때문에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진 건가요.

“최저임금도 영향을 줬겠지만 근본적으로 주력 산업의 중요한 일자리가 무너져 이렇게 된 것으로 봐야겠죠. 울산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간 투자 안하고 신산업 개발 안했습니다. 1990년대 개발한 휴대폰 이후 우리가 개척한 신산업이 있습니까. 여전히 1980년대 했던 조선과 자동차 철강이 우리 주력 산업입니다. 외환위기 이전에 우리나라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5%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29%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설비투자는 반토막났습니다. 경제 체질이 약해져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것이지 이걸 최저임금 가지고 얘기하는 건 변죽 울리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국가비상사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문제가 심각하고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력산업이 모두 중국한테 먹혀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에 확실히 앞섰다고 할 수 있는 건 반도체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반도체 공장 17개 짓는다고 하니 반도체도 얼마 안남은 것 같습니다. 새로 나온 중국 화웨이 휴대폰 가격이 삼성 애플 제품이랑 똑같습니다. 중국이 나노테크와 태양광, 퀀텀컴퓨팅 같은 분야에선 한국은 물론 유럽 미국도 따라잡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빨리 따라올 지 몰랐습니다. 2025년쯤 이런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중국의 추격에 대비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한국의 권력 구조상 대통령이 가장 중요합니다. 재벌 규제에만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 혁신을 통해 신산업을 만들어야 내야죠. 해마다 정부가 10개 넘는 신산업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는데 이건 혁신 안하겠다는 거죠. 집중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 혁신은 정부 혼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혁신은 온 국민이 같이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천재 몇 명 때문에 혁신에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 국방부가 처음에 기초연구한 기술을 미국 기업들이 상용화한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합니다.”

▶정부도 그렇지만 한국 기업들이 투자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기업의 경영진이 배당 적게 하고 자사주 매입에 돈 많이 쓰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주가 떨어지고 해외투기자본의 인수·합병(M&A) 공격이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보겠다는 사람이 기업을 경영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먼저 차등의결권 제도를 생각할 수 있겠죠. 구글과 페이스북,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을 보호합니다. 주식 수로 보면 마크 저커버그가 가진 페이스북의 지분율은 10%대지만 의결권 기준으로 보면 그의 지분율은 28.5%입니다. 칠레가 썼던 기탁금 제도로 해외 투기자본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투자금의 30% 정도를 기탁받아 1년 안에 빠져나가면 기탁금을 주지 않고 오래 보유하면 기탁금을 돌려주는 방식이죠.”

▶하지만 한국에선 기업 경영권 보호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재벌이라는 구조가 진화해온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정부가 지금 재벌들한테 지주사 빨리 만들라고 하는데 과거엔 지주사 체제가 금지돼 있었습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지주사 형태의 군산복합체인 기업들을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패전후 미국 군정이 일본의 지주사 체제를 금지시켰습니다. 당시 한국은 이런 상황도 모르고 그냥 일본 따라 지주사 체제를 금지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이 허용한 기업 간 주식 교차소유도 금지해 한국 재벌들은 순환출자 형태의 지배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빨리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라는 건 너무 미국의 경영학 이론을 무조건 한국에 적용하려는 발상입니다.”

▶이번에 청와대 정책실장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뀌었는데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분배 잘못되고 재벌이 너무 많이 가져가 그런 게 아닙니다. 편의점 직원이 1000원 덜 받아 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규제가 너무 많아 그런 것도 아닙니다. 20년 간 쌓인 투자와 신기술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축산업이 붕괴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죠. 그런데 여전히 좌파는 최저임금에 집착하고 우파는 규제완화만 주장하는데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을 보고 접근해야지 미국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 쓰면 안됩니다. 스웨덴과 독일, 싱가포르 같은 나라를 보면 모두 각자 상황에 맞는 정책을 썼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요.

“저는 진영논리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저기서 비판을 받을 겁니다. 영화평론가가 영화를 잘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전쟁으로 말하면 저는 군수공장 공장장이지 참모총장은 아닙니다. 이제 나이도 든 데다 경제학계에서도 저는 비주류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만 꼭 한국에 간다는 것도 아니고 안 간다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운명이죠.(웃음)“

케임브리지=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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