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한국 부추기는 규제장벽

해외투자 올해 3분기까지 360억弗…국적포기자도 급증
국내투자 위축 속 돈·사람 '脫한국' 역대 최고 경신 전망
외국인 투자까지 이탈 가속…올들어 증시서 5.8兆 순매도
부산 지역 최대 남성복 업체인 파크랜드는 2~3년 전부터 사실상 국내 투자를 멈췄다. 그 대신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설비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본사만 한국일 뿐 주력 제품군의 핵심 설비는 모두 해외에 포진해 있다. 생산성을 감안하면 국내 공장만으로는 도저히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토르드라이브는 지난해 본사를 한국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국내에서만 6만㎞가 넘는 구간을 자율주행하며 각종 데이터를 쌓았지만 정작 상용화는 미국에서 준비 중이다. 국내에선 자율차 분야 규제가 워낙 촘촘하다 보니 사업성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국내 기업들이 한국 땅을 떠나고 있다. 전통산업, 첨단산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탈(脫)코리아’에 나서고 있다. 덩달아 돈과 사람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해외 직접투자, 국적포기 등 ‘돈’과 ‘사람’의 해외 이탈 기록은 모조리 경신될 조짐이다. 그 사이 국내 투자는 꽁꽁 얼어 7년 내 최악의 수준까지 위축됐다.

얼어붙은 국내 투자, 불붙은 해외 투자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분기 해외 직접투자 송금액은 131억달러로 지난해 3분기보다 33.0% 늘었다.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다. 올 들어 누적치는 360억2000만달러다. 이 추이대로라면 연간 사상 최고 기록이었던 지난해(437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유망 해외 투자 건을 찾아 나선 기업이 적지 않지만 국내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측면도 강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국제수지 금융계정에서 비금융기업 자산은 17억3000만달러로 지난해 1분기(19억4000만달러)만 제외하면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 자산은 국내 기업 등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 은행 계좌 등에 예치해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쓸 곳이 없는 자금이더라도 국내에 들여오지 않고 일단 외국에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국내 투자는 크게 위축됐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지식재산권 투자 등 기업 투자를 아우르는 총고정자본형성은 올해 2,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3분기엔 5.7% 줄어 2011년 3분기(-8.0%)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기업과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한국을 등지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국적포기자는 3만269명에 달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사상 최고치였던 2016년의 3만6404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과 우수 인재 유치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은 과도한 산업 규제와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 등이 기업과 자금의 이탈을 유발하고 있다”며 “경직된 노동구조에 따른 생산성 하락도 기업과 투자자금의 탈코리아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이탈도 본격화되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 둔화 우려가 불거지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도 본격화되고 있다. 올 들어 7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규모는 총 5조7769억원에 달했다. 이는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랠리로 고공행진을 하다가 본격 조정에 들어간 2011년(7조9954억원) 이후 7년 만에 최대 규모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 기업실적 악화, 반(反)시장성 규제 등이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커진 이유로 꼽힌다. 미국과 중국 간 통상분쟁 격화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이 세계 주요국 중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란 외국인들의 우려가 커졌다. 전체 상장사 중 영업이익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뺀 나머지 유가증권 상장사들의 3분기 영업이익은 11.4% 감소하는 등 ‘반도체 착시현상’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국인 대주주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가 추진되는 등 투자자 이익에 반하는 규제 강화 움직임도 외국인들의 의구심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사장은 “최근 홍콩,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외국인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매우 취약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고경봉/서민준/송종현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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