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6일 긴급회의 소집해 '광주형 일자리' 논의

답답함 토로한 문재인 대통령
"광주 아니면 사업 의미 퇴색"
광주시·노동계 등에 적극 협상 당부

노·사·민·정 겨냥 '무역의 날 축사'
"자기 것만 요구하면 안된다"
기업·노동계 등에 양보 강조

< 삼성전자 ‘900억불 수출의 탑’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5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게 ‘900억불 수출의 탑’을 수여하고 있다. 900억불 수출 기록에 따른 수상은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을 긴급 소집했다. 연차를 내고 쉬던 임 실장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모여 예정에 없던 회의를 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주요 안건은 무산 위기에 처한 광주형 일자리였다.

靑 “반드시 광주여야 한다”

당초 이날 문 대통령은 광주에서 열리기로 한 광주형 일자리 협약 체결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도 현장에 나와 상황을 점검했다가 협상이 틀어지자 철수했다. 전날까지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협상이 틀어질지 몰랐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수개월째 겉돌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의 직후 기자에게 “광주시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 유치를 바라는 광주 시민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노사 상생(相生)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광주시가 4년 전 처음 제안했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투자로 공장을 지어 지역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초임 연봉을 3500만원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광주라는 도시의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진보정치의 상징인 광주가 아니면 이 사업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강조했다. 여당을 중심으로 군산 등 다른 지역을 검토하겠다는 압박성 의견이 나왔지만 광주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조금씩 양보해 함께 가야”

문 대통령은 이튿날인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의날 기념식 축사에서 “성급하게 자기 것만을 요구하는 것보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 좋다”며 “시민사회·노동자·기업·정부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성사를 책임지고 있는 노·사·민·정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은 물론 노동계도 양보하며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광주를 고집하더라도 정부는 물론 자동차업계 역시 광주시가 광주 노동계를 다시 설득하지 않으면 광주형 일자리 사업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 보고 있어 남은 숙제가 적지 않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광주시와 현대차가 접점을 이뤄낸 연봉 3500만원(주 44시간 근로 기준)은 현대차 직원들의 초봉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라며 노동계의 양보를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 내부에서 이미 광주형 일자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기존 취지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정부와 기업(현대차) 간 협상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자동차업계에선 “당초 안을 보고 투자를 검토했던 현대차는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에 속앓이만 하다가 유감을 밝힌 것 아니냐”고 토로하고 있다.

광주시에서 협약식도 하기 전에 ‘사실상 협상이 타결됐다’며 축포를 터뜨린 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안팎에선 “전(前) 시장이 내놓은 공약이라 이용섭 광주시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산(山)’으로 가는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가 무산 위기에 놓인 것은 광주시와 광주 노동계가 지난 5일 ‘35만 대 생산 때까지 단체협약 유예’ 조항을 투자협정서에서 빼기로 하면서다. 광주 노사민정협의회는 이 조항을 ‘신설법인 경영이 안정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로 수정해 의결했다. 광주 노동계가 단체협상 유예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자 모호한 문구로 바꾼 것이다.

현대차는 그러나 즉각 공식 입장문을 통해 수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실무자들은 현대차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고 봤다. 정부의 뜻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기업에서조차 수용 불가를 밝힐 만큼 사업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견을 보인 ‘35만 대 생산 때까지 단체협약 유예’ 등에 대해 노동계의 양보가 없다면 원점에서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도 “협상 주체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다”고 할 뿐 직접적인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광주형 일자리가 노동자 일자리를 줄이고 이미 포화 상태인 자동차 시장에 위기를 초래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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