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희 디캠프 커뮤니케이션팀장]


‘코미디빅리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지금은 종영된 ‘전설의 복학생’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예비군복을 입고 등장하는 국문학과 복학생은 후배들이 영어를 쓰면 “국문학도가 영어를 써?”라며 외래어를 우리나라 말로 바꾸는 시합을 합니다. 예를 들면 와이파이는 ‘전파 무지개’, 네비게이션은 ‘말하는 대동여지도’, 인턴은 ‘체험 삶의 현장’, 미션임파서블은 ‘아… 안될 것 같은데’, 미션임파서블2는 ‘아… 이번에도 안될 것 같은데’ 등 웃음을 자아내는 레퍼토리가 지금도 인터넷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국내 유일 월간 데모데이(사업 평가회)인 디데이(D DAY)를 진행하는데 청중평가상이 있습니다. 청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기업이 이상을 받게됩니다. 청중평가는 종합 평가에 합산되기 때문에 대체로 우승 기업이 청중평가상까지 차지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달 대구에서 처음 개최한 디데이에서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순위권에 들지는 못한 원스텝모어(대표 박재병) 케어닥이 청중평가상을 차지했습니다. 원스텝모어는 노인요양 시설의 평판과 등급을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입니다. 이 업체는 블록체인처럼 뜨는 기술이나 특허를 보유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박재병 대표는 대중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서비스를 잘 설명했습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계에는 대중들이 잘 쓰지 않는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손익분기점(Break Even Point)라고 했으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BEP’의 반복 등장에 모르면서도 아는 척 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제게도 있습니다. BM도 지레짐작으로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의 약자(abbreviation)라는 걸 추측했습니다. 피벗(Pivot, 사업 전환)을 처음 들었을 때 저만 농구공과 엑셀 작업을 떠올린 건 아니었을 겁니다. 유학 시절 교수님이 길더라도 왜 줄임말을 쓰지 말라고 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갔습니다.
디캠프가 매년 주최하는 스타트업의 거리축제, IF페스티벌이 신촌 연세로에 나갔던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을 찾기 위함'입니다. 잠재적 고객은 거리에 있는데, 스타트업 행사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개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이 결국 집중해야 하는 잠재적 소비자들은 담 너머에 있는데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자꾸 들어오라고만 한다면 누가 더 손해일까요? 대체불가한 외래어는 어쩔 수 없지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언어로 소통하는 건 홍보 관점에서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는 난이도가 있는 고상한 단어들을 사용해 대학생들과 '화이트 칼라' 계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이 신문을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면 영국 대학 입학을 위한 필수 평가 시험, 아이엘츠(IELTS)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일간지 중 가장 비싼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명성과 달리 매년 적자 신세입니다. 영국의 대학 진학률은 50%에 불과하니 읽는 사람도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반면 평범한 중산층 주부를 타깃으로 신문을 발행해 온 데일리 텔레그라프(The Daily Telegraph)는 사용하는 단어가 어렵지 않고 가독성이 높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 중 하나가 됐습니다. 구독자 수는 가디언지보다 3배 많습니다.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도 가디언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 창업지원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자신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대중에게 소구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전문적인 설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심사 평가 위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 중에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오히려 관객들의 위화감을 조성할 때가 있어 스타트업 저변 확대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데모데이가 어떻게 해서 스타트업의 대표 문화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만약 데모데이가 스타트업만의 이벤트였더라면 굳이 외부 관객을 초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과를 자축하고 과시하는 자리가 될 뿐입니다.

스타트업은 혁신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갑'의 창업 집단이지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아닙니다. 스타트업 문화가 성숙해짐에 따라 현업에 있는 직원도 담 너머에 있는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새로 익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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