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뤼디그룹이 출자해 제주에 세운 녹지국제병원이 우여곡절 끝에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개설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도 투자개방형 병원의 물꼬가 터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47병상의 동네 의원급 규모인 데다, 외국인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과목도 성형외과 등 4개 과로 한정되는 등 ‘조건부 개설 허가’에 가깝다. 좌파 시민단체와 의사협회 등은 이마저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설치 등을 담은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고, 이후 투자개방형 병원 개설 범위가 제주로 확대될 당시만 해도 기대가 컸다. 태국 범룽랏병원, 싱가포르 파크웨이병원처럼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면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국내 의료기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국내에 진출하려던 굴지의 외국 병원은 좌파 진영의 ‘의료 민영화 반대’ 공세에 막혀 한국을 떠났다. 2005년 송도에 개설 계획을 밝혔다가 포기한 미국 뉴욕 프레스비테리안(NYP)병원, 2009년 송도에 병원 설립 계획을 세웠다가 철회한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등이 그런 사례다. 우리 내부 갈등 탓에 미국 최고 병원을 놓치고 중국 ‘동네 병원’ 수준으로 전락한 ‘무늬만 투자개방’이 되고 만 것이다.

시민단체·의사협회 등은 이 순간에도 “투자개방형 병원이 도입되면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근거 없는 선동에 가깝다. 오히려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된 지 16년, 제주특별법이 도입된 지 13년 동안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왜곡됐으면 지금의 녹지국제병원 수준밖에 될 수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의료산업을 키우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데 우리만 내부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원래 취지대로 돌아가려면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투자개방형 병원을 유치해야 하고 내국인도 자유롭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의료법상 규제를 풀어 국내 의료기관도 외부 투자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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