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채 전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의사는 인체를 과학적으로 탐구해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직업이다. 실증주의적 사고에 익숙하다. 대학병원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숱한 죽음을 본 의사가 자신의 경험 등을 토대로 근사체험에 대한 책을 냈다. 정현채 전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사진)가 쓴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다. 근사체험은 뇌와 심장의 기능이 멈춰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상태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의사가 근사체험에 대한 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전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누구나 궁금해한다”며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이런 의문에 대해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가 세계적으로 많이 축적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 교리나 문화적 믿음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 영역 자료들”이라며 “과학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이전에 비과학적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진실로 드러나는 발전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교수는 세계 영향력 3위의 의학 학술지 ‘랜싯’에 2001년 게재된 논문을 사례로 들었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사망 판정을 받은 직후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사람 344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조사 대상자의 약 18%인 62명이 사망 판정 당시 체외 이탈이나 먼저 죽은 가족과의 만남 등을 경험했다”며 “환자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고 깨어나기도 했기 때문에 환각을 겪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전 교수가 근사체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뭘까. 그는 “약 15년 전에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일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며 “자료 내용이 병원에서 일하면서 겪은 것과 일맥상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육체가 없어도 의식이 또렷이 유지된다는 걸 알았을 때의 경이로움은 삶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꿨다”며 “이전에는 죽음을 생각하면 무서웠는데 막상 죽음을 직시하니 그런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정 전 교수는 지난 1월 방광암 진단을 받은 뒤 네 차례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돼 퇴원한 상태지만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건 아니다. 그는 “암 선고를 받으면 충격이 큰 게 보통인데 죽음을 오래 탐구하다 보니 그러지 않았다”며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죽음을 직시하면 삶을 더 충만하게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변 사람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정 전 교수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채 지음, 비아북, 380쪽, 1만60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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