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임원 인사

변화보다 '안정' 택한 삼성

사장단 2명·임원 158명 승진…반도체·부품이 절반 넘어
김기남 부회장 승진…김현석·고동진과 '트로이카 체제' 유지
내년 경영 불확실성 커져 검증된 리더십에 '위기돌파' 특명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가 내년에 경기 침체와 경영 불확실성이 심해질 것으로 보고 ‘위기 대비형’ 임원 인사를 했다. 핵심 사장단을 전원 유임시키고 임원 승진자 수를 작년보다 30%가량 줄였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한경DB

삼성그룹이 연말 정기인사에서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 지난주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전원 유임한 데 이어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 계열사 수장들도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이 확실시되는데도 임원 승진자 수는 작년보다 30% 줄였다. 국내외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영 불확실성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점을 감안해 삼성이 ‘위기 대응형 인사’를 했다는 분석이다.

“승진 잔치는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선임한 김기남(반도체·부품), 김현석(소비자가전), 고동진(IT·모바일) 등 ‘트로이카 최고경영자(CEO) 체제’를 한 해 더 유지하기로 했다. 반도체 가격이 4분기부터 떨어지는 등 내년 경영여건이 올해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직을 흔들기보다 검증된 리더십에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60세 이상 ‘고참 경영진’을 후선으로 보내는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도 유임 결정의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주요 경제대국 가운데 중국 독일 일본의 성장세가 지난 3분기부터 둔화된 데 이어 내년 하반기부터는 ‘마지막 보루’인 미국마저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경기가 나빠지면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지는 점을 감안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리더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내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을 앞둔 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가 조만간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삼성이 ‘안정’을 택한 이유로 꼽힌다.

‘승진 잔치’도 벌이지 않았다. 부사장 13명, 전무 35명, 상무 95명 등 모두 158명을 승진자 명단에 올리는 데 그쳤다. 221명을 승진시킨 작년 말 정기인사보다 30%가량 줄어든 수치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80%가량을 책임진 반도체 시황이 이미 꺾인 데다 내년 스마트폰과 가전 등 완제품(세트) 시장 상황도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경영진은 2014년 25조원 안팎이던 영업이익이 올해 64조원(증권가 전망치)으로 늘어나는 동안 조직에 군살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불황에 대비해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낸 IT·모바일(IM) 부문과 소비자가전(CE) 부문은 승진 임원보다 회사를 떠나는 임원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주의 인사…반도체 약진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문은 단연 반도체·부품(DS)이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전체 영업이익의 80%가량을 책임진 DS부문에서 전체 승진자의 절반이 넘는 80명이 나왔다. 이 중 12명은 직위 연한과 관계없이 ‘발탁 승진’한 사례다. DS부문에서 이렇게 많은 임원이 ‘조기 승진’한 것은 처음이다.

DS부문 사령탑인 김기남 부회장은 이번 인사로 트로이카 CEO 가운데 ‘맏형’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김형섭 메모리사업부 D램 PA팀장, 박재홍 파운드리사업부 디자인서비스팀장, 송두헌 메모리사업부 YE팀장, 전세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장, 조병학 시스템LSI사업부 기반설계팀장 등 부사장도 대거 배출했다.

CE부문에선 추종석 영상전략마케팅팀장이, 무선사업부에선 김동욱 베트남법인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차세대 리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과 여성 인력도 임원으로 발탁했다. 메모리 플래시 PE팀의 김은경 상무 등 여성 8명이 임원 승진 명단에 포함됐고, 존 테일러 파운드리사업부 상무 등 외국인 3명도 글로벌 현장에서 성과를 거둔 공로로 승진했다.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펠로 1명과 마스터 14명을 선임하며 R&D 인력 우대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철저한 성과주의 인사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조만간 조직 개편 및 보직 인사를 단행한 뒤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좌동욱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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