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軍 손발 묶은 격이라는 '남북군사합의'
비핵화 협상 꼬이면 北이 군사도발 할 수도
將軍이라면 최악 상황 가정하고 직언해야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학 >

장군은 대통령에게 직언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도 장군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군사적 긴장 완화가 평화를 향한 길이라며 청와대가 단독 질주(!)하는 요즘에 아주 절실한 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도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마셜 장군의 직언이 유명하다. 어느 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해 항공기 예산을 따낸 것을 축하하는 백악관 파티에 참석했다. 모두 쾌거를 축하하는데 유독 처음 보는 장군만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루스벨트가 그에게 말을 붙였다. “이왕이면 대통령께서 조종사 양성 예산도 함께 따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조종사 양성에도 엄청난 돈이 듭니다.” 마셜의 직언 한마디에 파티 분위기는 썰렁해졌고, 몇 해가 흘러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백악관에 올라 온 신임 육군참모총장 후보 명단을 보고 대통령이 물었다. “몇 년 전 백악관 파티에 참석했던 그 장군이 누구죠?” 직언한 마셜을 기억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라성 같은 장군들을 모두 제치고 파격적으로 마셜을 참모총장에 임명했다.

마셜의 직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대통령께서 듣기 좋은 이야기보다 ‘듣기 싫은 직언’을 더 하겠습니다.” 임명장을 받으며 한 말이다.

우리 역사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다. 선조는 “한산도에서 나와 부산진을 공격하라”는 왕명을 내렸다. 그런데 충무공은 직언하며 따르지 않았다. 영화 ‘명량’에서 보듯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싸울 땐 조선 수군이 우세하다. 하지만, 부산 같이 탁 트인 바다에서는 느린 판옥선(板屋船)이 빠른 일본의 안택선(安宅船)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충무공의 직언을 무시하고 부산진으로 나간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궤멸했다.
군(軍)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초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은 위험한 수준이었다. 만약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 같은 장군들의 직언이 없었다면 한·미동맹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지 모른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놓고 날이 갈수록 국민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모든 군사합의는 철저히 등가(等價) 협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북에 유리한 전력(戰力)은 제공권이다. 북은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를 휴전선 바로 위에 배치하고 있다. 지난 합의가 진정한 ‘등가 협상’이었다면 비행금지 구역과 장사정포 사이에서 뭔가를 주고받았어야 했다. 더욱이 동맹국과 우리 군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너무 성급히 해치웠다. 오죽하면 전직 국방장관들과 예비역 장성들 사이에서 “남북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손발을 묶어 버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연일 나오겠는가.

앞으로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북과의 모든 합의에선 ‘등가 협상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벌써 “비행금지구역 한강 하구로 확대”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등가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북의 장사정포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북의 양보(일부 후방 배치 등)를 받아내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비행금지구역 확대로 장사정포 도발을 초기에 감시할 수 있는 공중 정찰 능력을 포기한다면, 이는 등가 협상이 아니라 적을 이롭게 한 이적(利敵) 협상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겠다고 한다. 청와대는 벌써 비핵화가 가까워진 듯한 분위기에 들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미·중 무역전쟁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무릎을 꿇게 한 트럼프는 아주 노회한 협상가다. 어쩌면 ‘북에 비핵화의 진정성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평양의 지도자를 다시 만나려 할지도 모른다. 만약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지난 6월 싱가포르 회담 때처럼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비핵화 협상은 엄청 꼬이게 된다. 북이 군사적 도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청와대가 아무리 낙관한다고 해도 장군은 최악의 국방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는 선배 장군들의 우려를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한다.

장군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직(職)을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하다가 해임되면 명예는 건진다. 하지만 직에 미련을 갖고 잘못 처신하면 평생 쌓은 명예를 잃는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뀐다. 소신 있게 직언한 훌륭한 장군의 명예는 영원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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