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엔 국민적 합의 중요
WEC 상설기구 'FEL-100'처럼
젊은 에너지 전문가 의견 존중해야"

김영훈 <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대성그룹회장 >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탈(脫)원전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조성 발표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 논쟁이 국가의 미래 에너지 대계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이라면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에너지 정책들에 대해 사안마다 찬반으로 나뉘어 접점을 찾기는커녕 팽팽한 대립을 이어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기성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논의 결과에 따른 영향은 적어도 30~40년 뒤 미래 세대에 미칠 것이다. 따라서 ‘미래 세대에 어떤 에너지 시스템과 환경을 물려줄 것인가’를 에너지 전환 논의의 중심에 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논의 과정에 정작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주인공이 될 젊은 세대의 목소리는 빠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미래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기성세대의 이해관계나 선입견 등이 배제된 젊은 세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에너지 전환논의에 새로운 활력과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분야에서 일정기간 이상 식견을 쌓은 젊은 전문가들의 비전을 반영할 수 있는 상설 프로그램의 도입을 제안하고 싶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가 미래 에너지 리더들을 위해 상설기구로 운영하고 있는 ‘FEL-100’ 프로그램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FEL-100은 에너지 분야에 최소한 3년 이상 경력을 지닌 만 35세 이하의 젊은 전문가 100명을 선발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 또는 그룹별로 테마를 정해 연구활동 및 보고서 작성 등 상시 활동을 하고, 세계에너지총회 등 WEC 주요 행사나 프로그램에 참가해 자신들의 의견과 비전을 제시한다. 90여 개 회원국마다 한두 명씩 선발하다 보니 선발 과정부터 경쟁이 치열한데 우리나라도 현재 두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투명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국민적 합의 도출은 매우 중요하다. 전환 과정에서 혼선을 최소화하고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민적 합의가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10여 년 전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녹색성장 정책이 정부 교체와 함께 일거에 폐기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국민적 합의만이 이 같은 비극적 결말을 막는 예방책이다.

흔히 에너지 전환 모범국이라고 평가받는 독일과 덴마크도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공론화를 통해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뤘다. 이를 통해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정책에 대한 일관된 지지여론 형성은 물론, 자기 몫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책임의식도 높아질 수 있었다.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공론화위원회에서 470여 명의 시민참여단을 구성, 열띤 논의를 거쳐 건설을 계속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정책에 반영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국민도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에너지 전환은 결코 짧은 기간에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최소한 50년 이상의 길고 지루한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젊은 에너지 전문가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가 참신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개진하고 정치권과 에너지 분야에서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면, 에너지 전환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돌파구 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도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참여의식과 책임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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