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편의점 본사의 자율규제라지만
"실세장관·與의원 보는 앞인데 대표들 목소리 낼 수 있었을지…"

이태훈 경제부 기자

4일 오전 8시30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CU GS25 세븐일레븐 등 6개 편의점 대표가 속속 모여들었다. 이른 아침 대형 편의점 업체 대표들이 ‘집합’한 이유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앞에서 ‘편의점업계 자율규약 선포식’을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기존 편의점에서 50~100m 거리 이내에는 신규 편의점을 열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율규약안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과밀화 해소를 위해 편의점업계가 합의한 자율규약으로 편의점 시장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편의점업계 근거리 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이 4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편의점업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김병욱 의원, 우원식 의원, 남인순 의원, 김 위원장, 조윤성 GS25 대표(한국편의점산업협회장), 정승인 세븐일레븐 대표, 김성영 이마트24 대표, 이은용 씨스페이스 대표.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공정위는 신규출점 거리제한이 편의점 본사가 스스로 마련한 규제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편의점업계가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지난 7월 자율규약안을 들고 찾아왔고, 공정위는 이를 심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김 위원장과 편의점 대표들의 회동을 보면 ‘과연 편의점업계가 스스로 마련한 안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자율규약에 대한 성실한 이행을 강제한다는 의미에서 편의점 대표 6명에게 ‘확인서’까지 받았다. 6명의 대표는 김 위원장이 보는 앞에서 ‘자율규약 이행 선언문’에 돌아가며 사인했다. 옆에선 우원식 남인순 등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지켜봤다. 을지로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인 ‘을(乙)’을 보호하겠다며 여당 내에 구성한 단체다.

업계 관계자는 “실세 장관과 여당 유력 정치인들이 보는 앞에서 편의점 대표들이 협약서에 서명한 뒤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정부가 강조하는 업계 자율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보였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자율규약임을 애써 강조하는 게 18년 전 내린 판단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말도 들린다. 공정위는 2000년 ‘기존 편의점 80m 이내에는 신규 출점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은 편의점업계의 행위를 담합으로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규 출점 거리제한을 사실상 묵인했다. “경쟁을 촉진해야 할 공정위가 과당경쟁을 빌미로 오히려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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