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침체 경고하는 경제지표 외면하는 정부
정책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문제의 본질
'재정 퍼주기'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아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다사다난했던 무술년(戊戌年)의 마지막 달, 첫 직장인 은행연구소에서 새해 경제 전망을 하던 일이 떠올랐다. 연구소가 내놓은 경제 전망 수치들이 기업들의 새해 영업 계획에 반영된다는 무게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이젠 대학에 있으니 예전 같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전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아는 기업인마다 도저히 신년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내년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고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올해는 국민 걱정거리로 등장한 자동차뿐 아니라 그나마 호황이던 반도체·화학 등 주력 산업마저 꺾이고 있는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 휴전이라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미·중 무역전쟁, 최저임금 인상,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산적한 국내외 악재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이다.

서민들의 마지막 쌈짓돈인 손해보험사 장기보험 해약 소식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해약 건수는 402만9737건으로 전년 대비 30만5064건(8.2%), 해약 환급금은 15조7851억원으로 3조2290억원(25.7%) 늘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하면서 7월보다 0.2%포인트 낮춘 것을 시작으로 국내 예측 전문기관들도 줄줄이 국내 경제 전망치를 하향 수정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2.7%로 내렸고, KDI는 내년 전망치도 2.7%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심지어 엊그제 한은이 민간소비 증가율을 3분기 속보치에 비해 하향 조정하는 걸 보면 이 수준의 전망치 유지도 어렵지 않을까 걱정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과감한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면서 2010~2017년 연평균 세계 경제성장률은 3.9%로, 금융위기 전 10년 평균 성장률인 4.0%에 근접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 이후엔 주요국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조짐이 확연하다. 무엇보다 2009년 선진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투자를 퍼부으며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60%를 넘어설 정도로 기업이 부실해졌다. 미국은 세제개편 효과가 끝나가고 있고, 유로 지역도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의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은 기업의 비용 상승과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등으로 성장률 둔화가 예상된다. 그나마 미국, 일본 등의 고용시장 여건은 나쁘지 않겠지만 실질임금 상승폭이 제한적이라서 소비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내년에도 성장률 2%대로 성장세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기 논쟁을 하는 것은 한가해 보인다. 미·중 통상분쟁과 글로벌 통화긴축 기조라는 대외 여건은 모든 국가가 공통으로 직면하는 것이지만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기에 거스르는 정책 리스크를 추가로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문제의 본질이다. 올 한 해 고용 상황은 악화됐고, 소득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소비심리는 얼어붙었다. 정책 방향이 불확실성을 높이는 상황에서 내수경기의 구조적 불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경제지표는 외치고 있는데 정부가 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팀에 희망을 걸어보겠지만,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아낌없이 해야 한다면서 펌프질은 하지 않은 채 ‘재정 퍼주기’ 기조만 이어간다면 달라질 게 없다.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인상으로 거둬들인 재정으로 재정승수 효과가 낮은 소비성·이전성 재정지출을 늘려서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내수를 살리지 못한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투자를 구축하고 정부 부채를 축적시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재정으로 마중물을 퍼붓고도 비 온 후 젖은 낙엽처럼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경제 전망을 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현안에 현혹되지 않고 이제까지 나온 경제지표들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일이었다. 20년 전 갑작스러운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후회로 위기 감수성이 과도하게 높아졌는지 경제 뉴스의 홍수 속에도 위기 경고음만 귀에 들어와 박히나 보다.

insill72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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