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5박 8일간의 해외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체코 순방 일정이 논란이다.

G20 행사지인 아르헨티나 방문 전 기착지로 체코를 택한 청와대가 당초 ‘원전 세일즈’를 염두해뒀다고 밝힌 것과 달리 도착 후 ‘원전은 의제가 아니다’고 뒤집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체코 총리와의 만남 역시 순방 직전 ‘면담’이라고 소개했지만 ‘회담’으로 뒤바꼈다. 체코 현지 동포 기업인과의 간담회 또한 일정상의 이유로 취소되며 체코 방문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순방 전 기자들과 만나 “당장은 아니나 체코가 원전 추가 건설을 계획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원전 기술과 관련한) 우리의 강점을 충분히 전달할 좋은 기회라고 본다”고 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체코를 기착지로 택해 ’원전 세일즈’에 나선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체코는 두코바니·테멜린 지역에 1000㎿급 원전 1~2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우선협상대상자는 내년께 선정된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중국·러시아·프랑스·일본·미국 등이 경쟁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순방길에서 정상 외교를 통해 수주전에 힘을 싣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순방단이 도착한 지난 2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지에서 원전은 총리와의 면담 의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탈(脫)원전 정책을 고집하면서 해외에서 원전 세일즈에 나서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태도를 바꾼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체코를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비판도 쏟아졌다. 원전 수주를 위해 각국 정상이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정부만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청와대가 밝혔던 체코 현지 진출 기업 대표 간담회도 현장에서 취소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체코 방문 계기에 현지에 진출한 기업 대표들을 면담하고 이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설명해왔지만, 현지 도착 직후인 28일 오전 일정상의 이유로 간담회는 열리지 않는다며 취소 소식을 전했다. 남은 문 대통령의 체코 순방 일정은 프라하성 시찰과 형식적인 총리와의 회담만 남게 된 셈이 됐다.

문 대통령 이 같은 일정은 과거 사례와 비춰볼 때 상당히 상반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6년 중국-체코 수교 이후 67년 만에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체코를 찾았다. 시 주석의 방문은 원전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한국, 미국, 프랑스 등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원전 수주전에서 중국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 탓이었다. 시 주석은 당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 등 체코의 주요 인사들과도 두루 만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비롯한 양국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이보다 석 달 앞선 2015년 12월 프라하를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체코 정부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체코상공회의소 주최로 프라하 시내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체코 비즈니스 포럼’은 한국 측 사절단을 배려한 체코 대통령의 제안으로 프라하성으로 장소가 갑작스레 변경되기도 했다.

짧은 일정에도 이번 체코 순방은 잦은 외교 실수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27일 공식 영문 트위터 계정에 문재인 대통령의 체코 등 순방 소식을 알리며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로 잘못 표기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 1918년 합병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93년 1월 각각 분리 독립했다. 25년 전 분리된 국가를 우리 외교부가 혼돈해 외교적 결례를 범한 셈이다. 문 대통령과 체코 총리의 만남을 두고 ‘면담’으로 표기했다가 청와대가 황급히 ‘회담’으로 정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 간의 만남은 ‘회담’으로 표기해야하는데 외교부의 오기(誤記)”라고 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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