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현실 고려해야 할 '광주형 일자리'

일자리 목적 공장 신설은 위험…감량경영 추세에 역행
공급능력 과잉 상황…경차·저임금만으론 지속될 수 없어
생산의 유연성 확보 시급…임금 낮추는 방안 논의해야

이항구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도입해 추진하는 새로운 완성차 법인 설립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가 속해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반대 속에 현대차와 광주광역시 간에도 노동시간, 적정임금, 운영방식과 판매 물량 보전 등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 도입을 전제로 ‘자동차 100만 대 생산 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제를 수행했던 산업연구원은 당시 기아차가 2012년 광주공장을 12만 대 증설해 광주시의 자동차 생산능력이 62만 대에 달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증설 및 신설은 중장기 수요를 고려할 때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엔 현대·기아차가 국내 비용 상승을 극복하고 해외 수요 증가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국내 투자보다 해외 직접투자를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과제명을 변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광주시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발전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품·소재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역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광주시는 정부 예비타당성 심사를 거쳐 ‘자동차 100만 대 생산 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현재 논의 중인 신규 프로젝트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해 완성차 생산능력 확충에 집착한 결과는 아닌지 의문이다.

노동연구원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고안할 당시엔 한국 자동차산업이 금융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높은 성장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자동차산업은 국내 생산능력 확충보다 감량경영(downsizing)과 구조 고도화가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 됐다. 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도 국내 자동차산업의 과잉 공급능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채용해 신규 공장을 가동하면 자동차산업 전체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고, 노동삼권 자체가 부정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경차 10만 대론 수익 내기 어려워

국내 자동차산업이 자칫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검토는 일견 타당하다. 광주형 일자리의 롤모델인 독일과 미국의 ‘AUTO 5000’ 프로젝트와 ‘이중 임금제’는 자국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빠질 조짐이 보이자 노사 합의를 통해 전격 도입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모색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신규 자동차공장 설립 계획은 졸속으로 수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계획의 타당성도 그렇고 임금, 근로시간, 노사협의와 판매 방식 등을 너무 쉽게 변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체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경쟁 구조 등을 고려해 치밀하게 기획하고 생산 모델, 대규모 자본 투자 및 부품소재 공급망, 판매망과 정비망도 갖춰야 한다. 단순히 저임금 근로자만 채용해서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특히 고급차 업체를 제외하고 10만 대의 생산능력으로 수익을 달성한 경차 생산업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서 완성차 조립 공장을 건설한 사례는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물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GOCO(government owned contractor operated) 모델로 가더라도 지속적인 수익 창출 등을 통해 계속기업으로 장기 성장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원가절감을 위해 스마트 공장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초급 인력만으로 생산라인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기능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데 이는 인건비 상승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경우 광주시의 자동차산업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신규 법인 설립의 필요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광주시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 기반을 강화해 기존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투자를 재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아쉬운 것은 세계 자동차산업 환경과 국내 노사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제안한 점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쟁사들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 고용 조정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 차종 및 물량을 조정하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을 담보로 신규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노사 협력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충분히 구축하면서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한 뒤 기존 근로자 임금은 동결하고 신규 채용 근로자 임금은 낮추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국내 자동차산업 여건은 녹록지 않다.

車산업 위기 전국적으로 확산

광주시의 노·사·민·정이 머리를 맞대고 현대차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계획대로 투자가 이뤄지고 광주형 일자리가 실현되더라도 성과 부진으로 가동률이 떨어지고 현장에 불안이 엄습하면 그 효과는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국내 자동차산업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노사협력, 상생협력과 범부처 간 협력을 통해 구조조정의 역풍을 막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노사 갈등이나 노노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노·사·민·정이 노력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우리 자동차산업이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본 개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동차산업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고, 공급과잉 문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내용 보완과 시기 조절이 필요하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전제로 한 신규 공장 설립 계획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대승적 차원에서 재고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의 실업 문제는 한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안정 위한 묘책 필요한 시점

따라서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살리되 현재의 사업 계획은 일단 보류하면서 어렵더라도 기아차 광주공장의 지속가능 성장기반 강화에 노력해야 한다. 또 현대·기아차 노조는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선제적인 위기 극복 방안을 경영진 및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작금의 자동차산업 업황이 고용 안정을 위한 묘책을 찾아야 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겨울의 길목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노사가 유연성을 가지고 대응할 경우 터널은 짧은 곡선형일 수 있으나, 대립과 반목을 거듭한다면 긴 터널 속에 갇혀 공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형 노사 상생 모델 개발을 위한 노·사·민·정의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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