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윤 스파크랩 투자심사역]

‘항상 고객에 대해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나요?’ 강당에 모인 서른여명의 액셀러레이터(창업지원기관) 책임자들의 얼굴 위로 순간 멍한 깨달음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추석을 갓 보낸 다음이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콜로라도 주의 덴버, 아니 정확히는 거기의 개마고원쯤 되는 Devil’s Thumb 지역의 산장에서 10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워크샵을 가졌다. 1년에 한번씩 열리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네트워크 (GAN)의 서밋인데, 한국에서는 내가 소속된 스파크랩이 유일한 회원사로 5년째 함께하고 있다.

원래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 도심에서 모이곤했는데, 매일 일정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쉬워서였는지 주최측의 농간으로 우리는 다같이 산장에 갇혀 별수없이 친해졌다.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고산지대에서 와인을 마시니 평소보다 몇배로 빨리 취한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이틀간은 관심있는 주제에 따라 나눠져 세미나 또는 토론 등을 하게 되었다.
액셀러레이터란 단어 그대로 가속화시켜주는 기관인데, 초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시드머니를 투자하고 정해진 단기간동안 (통상 3개월에서 1년) 멘토링과 교육 등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키는 곳이다. 성공의 가능성을 발견하더라도 더 빨리 발견해서 경쟁력을 선점하고, 실패하더라도 더 빨리 실패해서 기회비용을 낮추자는 취지이다. 그렇다보니 각자가 디자인하는 소위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나는 ‘핏이 맞는 스타트업 찾기’와 ‘스타트업을 위한 인수합병’, ‘액셀러레이터의 펀드 레이징’ 등을 참여했는데, ‘효과적인 커리큘럼 짜기’라는 짧은 세션에서 단순하지만 그래서 자꾸 잊게 되는 사실을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세션의 인솔자는 참가자들에게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을 위해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을 외치게 하였다. 투자금, 멘토링, 성공기업 초청 강연, 재무제표 점검, 법률이슈 검토, 사업 피칭 연습 등 외치는 단어가 줄줄이 노트 패드에 적혔다. 이후 그 포트폴리오 기업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얻었으면 하는 결실’을 말하게 하였다. 프로덕트 마켓 핏, 성장 전략, 빠른 실패, 더 넓은 영업력, 해외 시장 판로개척, 강한 정신력 등.. 그리고 이를 나란히 대조하여 보여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했는가?

좋은 비즈니스는 좋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하다보면 문제점이 보이고, 해결방법이 바로 보이지는 않아도 어떻게 되면 좋겠다는 기대 결과는 상상해볼 수 있다. 바라는 결과 – 목표가 분명하다면 이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차이를 만드는 거겠지. 우리도 궁극적으로 그리는 결과, 미래에 대한 설정없이 당장에 손에 쥐어진 수단만 계속 들이밀고 있지는 않았나 싶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이순간에도 또 다시 깨닫고 있으니, 인간의 게으름은 끝이 없고 참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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