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14년 만에 마이너스

한파 몰아치는 지방 임대시장

경기 침체·대규모 입주 겹쳐
거제 84㎡ 2.5억→1.5억…울산 최고지역 4.5억→4억

평택 108㎡ 8000만원 하락…안산 54㎡ 1억원선 위태
"내년에도 예년보다 입주 많아…전세가격 약세 이어질 것"

<“세입자 구합니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2만50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경기 평택 소사벌지구에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의 한 중개업소에 전세입자를 구하는 매물장이 가득 붙어 있다. /평택=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국내에서 아파트 전셋값이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한 해는 세 번밖에 없다. 외환위기가 강타한 1998년, 카드대란 충격을 받은 2004년, 그리고 올해다. 올해 전셋값이 떨어지는 주된 이유는 지방과 수도권 외곽의 공급 과잉과 지방산업 경기 침체다. 신종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올해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자체 수급 요인이 전셋값 하락의 주된 이유”라며 “대규모 새 아파트 입주가 내년까지 계속될 예정이어서 전셋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거제 10개월 만에 22% 급락

19일 경남 거제시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e편한세상 고현’ 전용면적 84㎡ 전세매물은 최근 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2016년까지만 해도 전셋값이 2억5000만원 수준이던 주택형이다. 하지만 2년 만에 1억원(40%) 급락했다. 수월동 ‘거제자이’ 전용 84㎡ 전세매물도 지난달 1억9500만원에 거래돼 2년 전보다 1억원 낮아졌다. 조선업체가 몰려 있는 거제 아파트 전셋값은 2016년 10월 셋째주부터 2년 넘게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떨어졌다. 2011년만 해도 연간 20% 급등했지만 올 들어선 지난달까지 22.83% 급락했다. 고현동 L공인 관계자는 “3~4년 전 조선소가 잘 돌아갈 때 늘어난 아파트 공급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며 “원룸뿐 아니라 아파트도 빈집이 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주변 산업도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과 자동차업체가 몰려 있는 울산 전셋값이 지난달까지 9.47% 급락했다. 울산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꼽히는 남구 신정동 ‘문수로2차아이파크’ 전용 84㎡ 전셋값은 2년 전 4억5000만원 안팎이었지만 최근엔 4억원 선까지 떨어졌다. 무거동 ‘옥현주공’ 전용 59㎡ 전셋값 역시 2년 만에 5000만원가량 내렸다. 현지 D공인 관계자는 “그나마 입지가 좋아 가격 방어가 잘된 편”이라며 “주변 아파트 전세는 3~4년 새 가장 저렴한 가격에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 인근인 전하동 R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심각하다”며 “그나마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나가는 세입자에게 수천만원을 얹어줘야 하는 집주인은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구합니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2만50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경기 평택 소사벌지구에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의 한 중개업소에 전세입자를 구하는 매물장이 가득 붙어 있다. 평택=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역전세난 충청·수도권으로 북상

전셋값 급락세는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은 충청권과 수도권 외곽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충청권을 보면 지난달까지 충남 서산시 아파트 전셋값은 10.16% 급락했다. 충북 충주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7.87% 하락했다.

수도권에선 경기 평택·안산·안성 등의 전셋값 하락이 두드러진다. 안산 전셋값은 벌써 13.33% 급락했다. 안산은 ‘무더기 재건축’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잔동 ‘고잔주공8단지’ 전용 54㎡는 2년 전만 해도 1억6000만원 안팎에 세입자를 받았지만 요즘은 1억원 선이 위태롭다. 최근 1억10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줄지어 입주하는 새 아파트가 전셋값을 끌어내렸다. 안산에선 올해 6800가구가 집들이를 마쳤다. 내년에도 초지동과 인근 송산그린시티를 합쳐 8000가구가 집들이를 한다. 2020년엔 입주 예정 물량만 1만 가구를 넘을 예정이다. 최근 20년 동안 가장 많은 수준이다. S공인 관계자는 “새 아파트 전세 매물이 헐값에 계속 나와 역전세난이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9000가구에 이어 내년 1만6000가구가 집들이를 하는 평택에선 구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셋값 약세가 두드러진다. 용이동 푸르지오1차 전용 108㎡는 지난달 1억5000만원에 전세거래돼 2년 전 대비 8000만원 정도 하락했다. D공인 관계자는 “2015년께 분양한 단지들이 지난 연말부터 쉬지 않고 입주한 영향”이라며 “고덕국제도시가 내년부터 집들이를 시작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전세 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38만 가구로 올해(46만 가구)보단 적지만 여전히 예년(최근 5년 평균 약 33만 가구)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준이어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전세 적체가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내년엔 지방뿐 아니라 서울 상황도 올해보다 안 좋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갭투자’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여 전셋값이 떨어지는 지역에선 매매 가격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형진/민경진/양길성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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