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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種 행동주의 펀드의 공습

국민정서 고려한 고도의 전략
토종 행동주의 포문 연 KCGI
'물컵 갑질' 논란 된 한진 정조준…'여론전 명분 확보 유리' 판단한 듯

스튜어드십코드 등 우호적 환경
한진에 경영개선 요구한 국민연금, KCGI '우군' 될 가능성 높아
대주주 의결권 제한 법개정도 추진

펀드 공략 대상된 그룹 지주사
소수지분으로 그룹에 영향력 행사…외국인·기관 규합하면 경영권 위협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 시급"
마켓인사이트 11월16일 오후 4시45분

토종 행동주의 펀드 시대의 막이 올랐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로 알려진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신생 사모펀드(PEF) KCGI가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하면서 첫 포문을 열었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펀드들도 발 빠르게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원칙)를 도입하고, 금융위원회는 ‘한국판 엘리엇’을 육성한다는 취지의 사모펀드 규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평가다. 기업은 해외 헤지펀드에 더해 토종 펀드들의 공습을 방패(경영권 방어 수단) 없이 막아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토종 펀드 공습의 ‘신호탄’

과거에도 국내 행동주의 투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소액주주운동에 앞장섰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를 설립해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등에 투자했다. 같은 해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계열 사모펀드(마르스1호)는 샘표식품 주식을 사들인 뒤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부진했다. 지배구조 변화를 이끌 만한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무르익지 않아서다.

KCGI의 이번 한진칼 공습은 고도의 전략적 선택으로 과거 토종 펀드와는 차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KCGI가 한진칼을 첫 타깃으로 삼은 건 명분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갑질’ 사건 이후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여론의 도마에 올라서다. 주주 제안을 통해 의견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는 물론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KT&G 등을 공격한 행동주의 펀드들은 모두 해외 투기자본이어서 국부유출 논란 등 비우호적인 여론에 부딪혔다”며 “토종 행동주의 펀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역사상 최저점으로 떨어진 한국 주식시장에 불만이 큰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KCGI가 전날 지분 취득 사실을 공시하자 16일 한진칼 주가는 3650원(14.75%) 오른 2만8400원에 마감했다.

국민연금이 든든한 우군
신생 사모펀드인 KCGI가 대기업 한진그룹을 노린 데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우군’이 돼줄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한진칼 지분 8.3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물컵갑질 사건 이후 “경영체계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지만 한진그룹으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KCGI가 내년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교체와 비핵심 사업 매각,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면 국민연금이 KCGI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도 토종 행동주의펀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9월 국내 경영참여형 PEF의 경우 의결권 있는 주식을 10% 이상 취득해야 하는 규제를 풀기로 했다. 현대차 지분 1.4%를 보유한 채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뒤흔든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처럼 국내 PEF도 소규모 투자로 기업 경영에 간섭할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시급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로 그룹 지주사를 표적으로 삼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상당수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지주사의 소수 지분만 확보하면 그룹의 여러 계열사를 쥐고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KCGI가 시가총액(약 1조6000억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주사 한진칼을 공략 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KCGI는 약 1300억원을 투자해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시가총액이 7조원에 육박하는 한진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지주사 전환을 독려한 정부가 오히려 경영권을 취약하게 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상법개정안도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상당수가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차등의결권(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포이즌필(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권리) 등 세계 주요국에서 보편화된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창재/김익환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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