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훈의 家톡 (15) 주거공간 중심이 된 화장실

개인별 세면기가 분리된 화장실.

1962년 서울 마포나루에 현대식 아파트 단지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초현대식 아파트라는 집에 들어간 사람들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모든 주거공간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게 신기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그때부터 며느리들의 수난이 시작됐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형 서민아파트였으나 3대가 같이 사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기에 그 좁은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모든 평형에 화장실은 한 개밖에 없었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던 단독주택에서는 며느리가 볼일 보러 갈 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지만 시부모님이 손바닥만 한 거실에 있는데 문 한 짝을 사이에 두고 볼일을 본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 막 등장한 흑백 TV가 혼을 빼놓던 시절이라 시부모님은 거실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시부모님이 외출할 때까지 소변을 참았다. 한번 막힌 오줌보는 병이 됐고 아파트 단지에 살던 며느리의 일부는 오줌소태로 생고생을 해야 했다.

이런 현상은 화장실이 두 개로 늘어난 중형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우리 못지않게 소형 주택이 많은 일본에서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기발한 장치를 개발했다. 변기에 사람이 앉으면 자동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나게 해 민망한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파트가 바꾼 우리 주거문화의 여러 가지 현상 가운데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재래식 주택과 가장 차별화된 것 중 하나가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거나 단독주택에 산 사람들은 ‘칫간(측간·厠間)’ 또는 ‘뒷간’으로 불리던 재래식 화장실(변소)에 대한 고약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화장실을 왜 ‘측간’이라고 불렀을까. 측(厠)자는 평상이나 침상의 가장자리를 말한다. 마당 가장자리에 들어서는 화장실 위치 때문에 붙여진 말로 추측된다. 이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없던 한국 주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절집에서는 아직도 ‘해우소(解憂所: 걱정을 덜어내는 곳)’라는 운치 있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측간이라는 이름은 주거공간에서 밀려난 변방으로 유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 공간이 아파트 문화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고 이제는 모든 주택에서 당당하게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안방은 아파트, 단독주택 할 것 없이 전용 화장실을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거실 중심으로 생활이 바뀌고 안방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되면서 드레스룸과 화장실에 공간을 점점 뺏기고 있다. 머지않아 화장대가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갈 것으로 필자는 예상한다. 미국, 캐나다의 단독주택에서는 방마다 화장실이 딸리면서 화장대가 화장실 안쪽에 들어가는 게 이미 일반화돼 있다.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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