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주인공은 거주자와 사용자인데
공공건물은 이들을 도외시하는 경우 많아
건축주·건축가·사용자 역할 깊이 생각해야

김광현 < 서울대 명예교수·건축학 >

건축물, 특히 공공건축물은 새로 지을 때 현상설계를 해서 여러 안을 받아 결정한다. 이때 새로 짓는 건물의 목적, 용도, 규모 등의 설계 조건은 건축주가 제시하고 이 조건에 맞는 안은 건축가가 낸다. 이 건물이 공공건축물이라면 막대한 비용을 내서 짓는 것은 건축주인 행정관청이요, 심사위원을 정하는 것도, 앞으로 건물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모두 건축주다.

이렇게 보면 건축가는 잘 지어 달라고 설계를 부탁받은 자이지 그 건물을 대표하는 주인공은 아니다. 건축가는 지어질 건물을 올바로 구상하고 주어진 범위만큼 전체 건설 과정에 관여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건물을 짓는 사람은 아니다. 건물은 시공자가 짓지 건축가가 짓지 않는다. 건축물을 완성하는 데에는 건축가 말고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요사이 많이 말하는 도시재생이란 토지를 전면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들에게 더 유익한 환경을 주기 위한 개발 방식이다. 그러니까 도시재생의 초점은 거주자와 사용자에게 있다. 예전에는 “이런 건물에 이렇게 사세요”라고 설계해주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거주자나 사용자가 어떤 자세와 내용으로 참여하는지가 몹시 중요해졌다. 그럴수록 건축가는 많은 사람의 조건을 세심하게 듣고 공간과 물질로 번역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건축주는 건축물의 편리함, 효용성, 경제성에 대해서는 건축가보다 더 잘 알고 있고, 건축가는 이를 도외시하며 자기 작품만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렇다면 건축주는 지으려는 건축물의 목적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건축가는 건축설계 전문가이므로 현상설계 등에서 건축가의 의견이 앞서야 하고, 실무를 하지 않은 건축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앉힌 것은 잘못됐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렇지만 실무를 많이 한 건축가라고 건축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건축의 다른 전문가를 무시할 수 있는 자격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인 일본 도쿄도의 훗사시(福生市)는 시청사를 지을 때 시민에게 광범위하게 의견을 들었다. 이때의 보고서에는 이런 의견이 기록돼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저기가 네 학교다’라고 가르칠 수 있게 해주세요.” 이 의견은 주민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버스 정류장을 가는 길에 시청에서 일하는 내 친구에게 인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말 속에는 건축 전문가가 쉽게 알 수 없는 건물의 목적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올해 90세인 일본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는 몇 년 전 건축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건축의 공간화, 건축화, 사회화로 나눠 설명했다. ‘공간화’는 설계를 의뢰하는 이들의 희망을 공간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건축주요 사용자들인데, 건축설계의 창조적 행위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건축화’란 이것을 구조, 설비, 내외장, 공법 등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실무 건축가가 이 과정의 전문가들이다. ‘사회화’는 건물이 의도된 목적을 잘 충족해 본래의 목적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사회화’의 주인공은 사용자들이다. 이 단계에서 건축가는 관여할 기회가 훨씬 줄어든다. 오늘날 개발자나 공공건축물은 건축의 ‘공간화’와 ‘사회화’에는 이렇다 할 관심도 없고 구체적인 생각이 없어 이를 쉽게 생략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가 하면 건축가는 ‘건축화’에만 관심을 두기를 더 좋아한다.

최근 정부세종청사 새 청사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논란이 크다. 이 문제를 대하고 보니 한쪽은 사용과 참여의 ‘공간화’에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다른 한쪽은 ‘건축화’에만 힘주어 문제를 해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심사의 공정성보다 더 큰 문제는 건축물에 대한 모두의 의무와 역할을 여전히 넓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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