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EU 장관도 스위스에 계좌…伊정부, EU의 재정적자 전망치 상향에 반발

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적자를 대폭 늘린 내년 예산안을 고수하며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웃 나라 스위스에 계좌를 열고 예금을 예치하는 이탈리아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일(현지시간)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지난 3주 간 스위스로 넘어가 현지 은행에 계좌를 터 자산을 넣어두는 이탈리아인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고객들이 국경을 넘어 몰려들자 스위스 도시들에 있는 은행들은 가중된 업무에 현지에 거주하지 않는 이탈리아인들에게는 계좌 개설을 위한 약속을 잡아주는 것마저 힘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 레푸블리카는 EU의 규정에 어긋난 예산안을 제출한 이탈리아 정부를 향해 EU가 제재와 채무 위기 발발 가능성을 연일 경고하는 상황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채권 10년물의 금리차를 뜻하는 스프레드가 4년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자 국내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부유층이 안전성이 높은 스위스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탈리아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등 과격한 주장을 해온 파올로 사보나 유럽관계장관도 스위스 계좌에 자산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1명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이탈리아의 내년 재정적자 전망치를 당초 전망치인 국내총생산(GDP)의 1.7%보다 훨씬 높은 2.9%로 대폭 상향했다.

이 같은 수치는 이탈리아 정부가 제시한 2.4%보다도 높은 것이다.

EU는 이탈리아가 지난 달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도입, 연금 수급연령 하향 등 재정 지출 급증을 동반하는 계획들이 다수 포함된 데다 최근 급등한 스프레드를 고려할 때 이탈리아의 내년 이자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재정적자 전망치 상향의 근거로 들었다.
또한 EU는 이탈리아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 역시 이탈리아 정부가 추산하는 GDP의 1.5%보다 현저히 낮은 1.2%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유로존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EU의 이런 경제 전망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장관은 "이탈리아 경제에 대한 EU의 비관적인 전망은 우리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대한 분석이 불충분하고, 부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트리아 장관은 이어 "이탈리아 의회가 내년 예산에서 재정적자를 2.4%로 설정하기로 승인함에 따라, 정부는 이를 존중할 것"이라고 말해 오는 13일로 예정된 EU로의 예산안 수정 제출 마감 시한까지 재정적자를 하향조정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역시 성명을 통해 "EU는 이탈리아가 제출안 예산안의 긍정적인 효과와 이탈리아의 구조 개혁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우리가 자체적으로 도출한 경제 전망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믿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탈리아는 EU의 '문제아'가 아니라, EU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낮은 경제 성장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확장 예산을 편성해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성장률이 높아지면, GDP 대비 131%에 달해 유로존 2위 수준인 공공부채 비율도 낮아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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