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준 자부하는 한국 원전
안전 현안 해결할 기술 뒤따라야"

백원필 <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의 근본 원인은 최상의 과학기술 지식을 무시한 의사결정에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낮은 출력에서 불안정해지는 원자로의 특성을 무시한 채 시험을 진행했고, 후쿠시마 원전은 건설과 운영에서 일본의 지질학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원자력 안전에서는 최상의 지식에 기반해 ‘올바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1992년부터 중장기 계획에 따라 원자력 안전 연구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 능력을 확보하고 원자력시스템 개발과 가동 원전의 안전성 향상에 기여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있고 미국 외 원전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APR1400’의 개발과 검증에 큰 역할을 했다. 원자력 선진국이 다수 참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들을 유치해 성공시키기도 했다. 일본 정부 연구비로 후쿠시마 사고 원자로 손상 구조를 밝히는 실험을 수행해 그 결과가 NHK 특집 프로그램에 두 차례나 소개되는 등 글로벌 리더 그룹으로도 진입했다.

그럼에도 원자력 안전 연구가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향상시켰느냐는 물음에는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 연구기반이 거의 없는 데서 출발해 짧은 기간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게 됐지만 국내 원전의 안전 현안을 국내 연구를 통해 해결한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실용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연구 성과가 더 필요하고 그 성과를 산업과 규제 분야에 활용하는 시스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 때는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고 수소가스 폭발 등으로 격납건물이 파손돼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됐다. 이런 사고가 우리 원전에서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원자력 안전 연구는 원전에서의 중대한 사고 발생 가능성을 더 낮추고 중대한 사고가 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방사능 누출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원자력 안전 연구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앞으로도 이를 중점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원자력 연구개발 방향을 재정립하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국내 원전 가동에 따른 위험을 국민이 안심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방사성물질 대량 누출 사고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함께 모든 위협 요인에 대해 원전의 가동과 안전성 향상 효과를 정밀하게 평가하기 위한 통합적인 해석체계 구축 또한 필요하다.

원전 밀집 부지의 안전문제, 지진 등 자연재해 대응능력의 평가 및 향상, 격납건물의 중대사고 시 가동, 정전 시 원자로 냉각 등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를 활용한 구체적 해결방안 도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기술 등 소위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하면 원자력 안전 분야에서도 기술 혁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를 통해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데, 에너지전환정책으로 그 중요성은 더 커졌다. 안전 연구자는 지식의 생산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구 성과를 산업과 규제 현장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해 실체적 안전성 향상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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